[인터뷰] 하지원은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허삼관)
기사입력 : 2015.01.26 오전 9:12
허삼관 하지원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허삼관 하지원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향이 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향이 있지만 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향은 각기 다르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분자분 대답하는 하지원과 만났던 시간은, 마치 <허삼관>의 마을에 다녀온 것처럼 기분 좋은 몽롱해지는 향이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대륙을 호령했던 '기황후'가 세 아들의 엄마가 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했다. 하지원이 늘어진 목티를 입고 억척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 게 낯설었다. 하지원 역시 "사실 옥란이가 제 옷 같지는 않았어요. 어렵기도 하고, 자신도 없었고요. 사실 강렬한 캐릭터는 해봤지만, 욕을 하며 세 아들을 둔 억척스러운 역은 처음이거든요"라며 옥란이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하지원을 '옥란'이로 만든 것은 <허삼관>을 연출한 하정우였다. 하정우는 하지원에게 "저도 아빠 역이 처음이고, 옥란이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지원이 아이 셋 둔 엄마인 거다"라고 말하며 편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허삼관>에서 공개된 하지원의 모습에 지인들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옥란이가 늘어진 티셔츠에 메이크업도 안 하고 그런 모습이긴 한데, 정말 예쁜 옥란이었대요. 좋았던 것 같아요. '하지원에게 못 본 느낌이다'하셔서 '와 좋다' 생각했죠."


사실 하지원이 옥란이가 되면서 소설과는 좀 달라진 면도 있다. 더 뻔뻔하고 억척스럽고 거친 말투를 쓰는 옥란이가 되보려 노력도 했었다. "욕을 연습했는데도 어색하면 망하는 거잖아요."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하정우는 대본에 더 많이 있는 욕을 하지원에 맞게 수정했다고.


하지원 영화 '허삼관' 스틸 이미지 / 사진 : NEW

하지원 영화 '허삼관' 스틸 이미지 / 사진 : NEW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몇 번이나 '내 옷이 아닌 것 같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하지원은 옥란이가 되었다. 하지원은 그 도전으로 달라졌다.


"옥란이를 하니까 좀 달라졌어요. 예전에 강렬한 캐릭터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은 너무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진정성 있게 표현해보고 싶어요. 옥란이를 하고 나니까 재밌어요."


<허삼관>을 보면 느끼겠지만, '기황후'의 화려한 화장이 아니라도, '시크릿 가든'에서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냐는 길라임이 아니더라도, 목 늘어진 티에 아들 셋을 둔 엄마 하지원은 참 예쁘다. 예전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표정이다. 아이를 붙잡는 손이나,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나, 아이의 이불을 덮어줄 때, 그 따뜻한 모습이 참 예뻤다.


"점심식사 하면서 회사 분들이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하도 예쁘다는 얘길 많이 하는 거예요. 팬들도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매니저한테 '누나가 예쁘게 나왔니?'라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허삼관>에서 제 평상시의 에너지나, 밝음, 막 웃고 이런 게 옥란이한테 보였대요. 본인은 본인을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랬대요. 옥란이랑 제가 비슷한 면이 있나 봐요."


하지원은 자신의 '예쁜' 모습을 <허삼관>을 연출한 하정우에게 고마움을 돌린다. "제가 너무 편하게 놀 수 있도록 하정우 씨가 현장을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되게 편하게 디렉션도 주셨어요. 다만 놀랐던 건 옥란이가 예쁘게 입고 하소룡을 찾아가서 그 부인과 싸우는 씬 있잖아요. 원래 대본에는 여자들처럼 싸우는 건데 현장에서 전혜진 선배님이 따귀를 때리면 저보고 펀치를 날리래요. 그게 옥란이랑 어울릴 것 같다고. 액션 본능으로 때려달라고요. 그런 재미있는 디렉션도 있었어요."


모성애를 보여주는 연기도 처음이다. 하지원은 "솔직히 모성애가 연기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안아야지, 이렇게 봐야지, 이렇게 생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현장에서 자연스레 가족처럼 지내니까 행동들이 네추럴하게 나온 것 같아요. 수십 번 보고 연습하고 그래야 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허삼관>은 제가 그렇게 한다고 잘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케이, 놀자, 하늘 보고, 음악 듣고, 릴렉스' 이렇게 하니까 더 많은 것들이 보인 것 같아요"라며 자연스레 나온 디테일의 비밀을 설명했다.


하지원은 데뷔 후 오랜 시간 동안 불협화음 없이 대중을 마주해왔다. 오르락내리락이 익숙한 연예계에서는 독보적인 행보다. 이에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면서 사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라고 운을 뗐다.


"지금까지 지친다거나 그런 것보다, 아직까지 너무너무 재밌어요.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힘이 안 들잖아요. 싫어하는 걸 했을 땐 힘들지만. 그래서 계속 에너지가 나오고, 행복한 것 같아요. 누구나 작품이 잘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두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성격상 다 말하는 스타일인데, 감사한 건 좋은 걸 많이 보려는 스타일이에요. 아까도 어떤 기자분이 '남자가 뭐 하는 게 싫어요?'라고 물어보시는데, 제가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사람을 볼 때도 장점을 많이 봐서 세상 살아가는데 편한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하지원은 작품에 들어갈 때, 자신의 세상을 만든다. 그 세상은 음악과 향으로 이뤄진다. '기황후'때는 스릴러 넘치는 음악을 들으며 몸에 긴장감의 리듬을 익혔다. 그리고 홀로 당당히 서 있어야하는 '기황후'의 외로움을 베이비파우더향으로 달랬다. <허삼관> 때는 장작 태우는 우디향을 좋아했다. 인터뷰를 마친 하지원은 기자들에게 향수을 선물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향을 기억해달라는 듯이. 아마도 <허삼관>으로 만난 하지원과의 시간은 포근하면서도 은근한 섹시함이 묻어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머스크향이 진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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