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무'의 꼬리칸, 박유천
기사입력 : 2014.08.03 오전 10:17
'해무' 박유천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해무' 박유천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왕세자였고, 꽃선비였고, 경호원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백 마디 수식어가 필요없는 JYJ 멤버다. 그런 그의 신분이 수직으로 하락했다. 어느 무리보다 진한 수컷 냄새를 풍기는 뱃사람들의 세계에서 박유천은 꼬리칸으로 승선했다. 동글동글 순박한 모습, 거뭇거뭇 막 자란 수염자국이 보이는 동식이가 된 박유천은 '낯설다, 너'의 느낌보다 '야, 동식아~'라고 불러보고 싶은 '친근함'을 보여준다.


'해무'는 박유천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자신의 모습을 처음 큰 스크린에서 마주한 박유천은 "제 눈알이 1.5m 같았어요. 눈이 정말 크더라고요"라며 7세 같은 솔직한 느낌으로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먹먹함이 강하게 있었죠. 그 이후에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제가 출연을 안 하고 봤어도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여섯 선원이 보여주는 본능이 사람들이 다 가진 건데 그 본성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라고 '해무'에 대한 느낌을 전했다.


영화 '해무'는 박유천의 첫 스크린 데뷔작 외에도 봉준호 감독이 기획과 제작을 맡았고, 김윤석, 문성근, 이희준, 김상호, 유승목 등의 연기파 배우들의 합류로 화제를 맡았었다. 이들 사이에서 박유천도, 동식이도 '꼬리칸'이었다. 박유천은 현장에 대해 "대단하신 분들이 왜 대단하신지 알게 되어가니까 현장에 같이 속해있다는 것 자체도 기쁨이고 영광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순박한 동식이를 만들어준 것도 평범한 술자리였다고 회상했다.


"'해무'를 준비하고 촬영하며 식사나 간단히 한잔 하는 자리같이 그냥 일상적인 자리들에서 나오는 (선배님들과의) 대화들이 좀 편안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작용을 한 것 같아요. 선원으로서 봤을 때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오히려 쫙- 연기이야기를 했던 것보다도 일상적인 대화들이 더 연기할 수 있게끔 해 준 것 같아요, 평범한 자리들이."


영화 '해무' 스틸컷 / 사진 : NEW

영화 '해무' 스틸컷 / 사진 : NEW


실제로 박유천은 '해무' 촬영장에서 뱃멀미와 숙취를 함께 어려움으로 꼽았다. 한 번 바다에 나가면 하루에 12시간씩 배에서 울렁거림을 견뎌야 했다. 소화가 안 돼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버티다가 촬영이 끝나면 폭식과 다음 날을 위한 간단한 술 한잔이 이어졌다. 동식으로 있던 순간들에 정신적으로 회복이 안 되니 잠도 잘 오지 않아 혼자 꼭두새벽에 일어나 많은 생각을 했다. 박유천에게 동식은 힘든 것 보다 더 아팠다.


동식이의 아픔과 연약함이 극대화되는 장면은 홍매(한예리)와의 베드신이다. 이에 "노출이 심했다면 누가 내 몸을 보고 싶겠어요, 그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텐데"라며 "신경쓰였겠죠"라고 웃음 지었지만, 박유천은 베드신을 앞두고 감정적으로 촬영 전날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모든 게 터져버리는 순간인 것 같아요. 동식이 어린 나이에 뱃사람이라는 프라이드도 있고 홍매 앞에서 허세도 떨고 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두렵고 여린 마음이 홍매 앞에서 터져버린 거죠." 이해가 되기 시작하자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촬영하는 4시간가량 그렇게 그는 동식이 되었다.


"현장에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어요. 굉장히 많이 울었고. 홍매도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었어요. '액션'이라는 말과 동시에 너나 할 거 없이 자연스레 눈물이 났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슬픔, 두려움, 아픔 그런 감정들의 여운이 남아서 많이 힘들었었죠. 마음을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 마음을 담고 있어야하는 몇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홍매를 연기한 한예리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준비했다. 홍매 역이 가장 늦게 캐스팅된 터라 결정된 직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박유천은 한예리를 "홍매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되게 오래 알고 지낸 동료 같은 느낌이었어요. 밖에 나가서 둘이 차 마시고 그러면 되게 주의가 의식될 법한데 그게 전혀 없는? 손잡고 다녀도 너무 편해서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어요. 동료 같은 느낌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영화 '해무' 스틸 이미지 / 사진 : NEW

영화 '해무' 스틸 이미지 / 사진 : NEW


두 사람의 '동지애' 케미는 베드신보다 동식의 작업멘트에서 빛을 발한다. '해무'에서 서툰 동식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홍매에게 슬쩍 혈액형을 묻는 질문. 익숙한 작업멘트냐 묻자 그는 "대본에 있었죠"라며 웃음 지었다. 이어 "비슷한 대사들이었는데 제가 사투리가 익숙해지면서 동식 식으로 살짝 변형됐죠"라고 덧붙인다. 특히 혈액형을 묻는 말에 홍매가 묵묵부답이자 "난 O형인데"라고 덧붙이는 부분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본인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실제 O형인 박유천은 묵묵부답 홍매에 머슥한 동식에게 빙의됐는지도.


"촬영하면서 홍매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뻘쭘했어요.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정말 귀엽잖아요. 홍매 나름의 경계인데, '사람을 경계한다' 드러내고 두려워하는 것들이 너무 매력적이고 예쁜 것 같더라고요. 만약 현실 세계에서 홍매처럼 사람을 경계하면 진짜 매력적일 것 같아요."


박유천은 그냥 동식이었다. 그는 동식이를 표현하려고 일부러 살을 5kg정도 찌웠다. 동식이의 순한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둥글둥글한 게 더 맞다고 생각했고 감독님 역시 여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는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 역시 스크린에 리얼리티로 노출했다.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이고 그 시간이면 남자는 수염이 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온몸에 피가 묻어있고 그런데 깔끔하고 카메라에서는 반짝 반짝 잘 생겨 보이는 게 오히려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제가 원래 수염 깎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왜냐면 극 안에서 너무 힘들고 격한 상황인데 꽃미남이어야 되고 그런 게 너무 싫어요. 드라마를 찍다 보면 저는 평을 안 보니까 잘 모르는데 제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분이 '제가 혼나요, 욕먹어요'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욕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어요. 잘 나오면 좋겠지만, 상황에 맞는 얼굴이 있는 거고 피부가 있는 거잖아요. 꼭 깔끔하게 나와야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아요."


인터뷰 현장에서 5kg 찌운 체중, 거뭇거뭇한 수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식이를 이야기할 때 박유천은 이내 '해무' 현장으로 돌아갔다. 선배님들과 기울이는 한 잔 술과 그 공기의 소중함에 어느새 그는 물들고 있다. '해무' 꼬리칸에 있는 박유천은 '해무' 속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역시 "문성근 선배님의 '철주야…'랑 홍매의 '집에 가야지'"를 꼽으며 자신의 자리를 슬그머니 제쳐준다. 상을 받지 않아도 상 같은 느낌의 작품이었다고 '해무'를 말하는 꼬리칸 박유천의 충무로 입성기가 더욱 반가워진 이유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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