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소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mintstudio.com
배우는 캐릭터와 함께 성장한다. ‘바다 속 숨은 별’이란 뜻을 가진 ‘드림하이2’(2012) 신해성을 지나, 재벌가 손녀지만 집안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동대문 의류상으로 성공한 ‘못난이 주의보’(2013)의 나도희와 함께 한 후 ‘천재 의사’ 박훈(이종석)을 만나 성장하는 ‘닥터 이방인’(2014)의 30대 초반의 흉부외과의 오수현을 이제 막 떠나보낸 배우 강소라는 흘러가는 시간처럼 그때 그 때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을 만나 공감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강소라는 “처음에 오수현의 극 중 나이가 30대 초반 설정이었는데 제가 충분히 할 수 있고 하고 싶다고 했어요. 수현이를 볼 때 내면은 성장하지 못하고 겉만 성장한 것 같았거든요. 비즈니스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것만 알지 실제 사람들과 부딪혀보고 끝까지 사랑해봐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보였죠. 유년시절에 엄마와 가족관계 외에 사회생활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아기 같더라고요. 즉흥적이고 말도 내지르는 걸 보면요”라고 말했다.
캐릭터를 선택할 때 강소라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생각해 자신이 맡을 수 있는 캐릭터들 위주로 만나왔다. 그는 “어색하진 않게끔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 분석에 들어가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려운 용어들이 잔뜩 있는 의학드라마 속 대사도 마스크로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려 완벽한 감정표현을 전달하기 힘든 수술신도 강소라에겐 벽이 되지 않았다.
“의외로 저는 어려운 대사는 많이 없어서 괜찮았어요. 과도하게 설정한 건 없는데 상대방에 따라서 다른 행동들을 유심히 생각했죠. 예를 들어 아버지한테는 실제 저와 다르게 아버진데도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좋게 해드릴까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수현이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애가 아닌 거죠. 있는 그 자체로만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인정받아야 사랑을 받으니까 불쌍하게 느껴졌고, 그런 면에서 필사적이지 않았을까 라고 이해했어요.”
그간 성장하는 캐릭터들을 맡아왔던 강소라에게 ‘닥터 이방인’의 오수현을 통해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실력도 일취월장하는 의사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었다. 직업 앞에 ‘여’의사, ‘여’검사 등 성별을 붙이는 것이 맞나 싶지만, 비교적 남자 캐릭터들의 사회적 위치나 재능 앞에 여성 캐릭터들 역시 동등하게 보이기를 바라는 시청자 중 한 명이었기에 러브라인을 떠나 자립적으로 성공한 여성상을 만나 보고 팠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중 후반부로 가면서 훈이를 짝사랑하는 신이 많았는데 그런 점은 처음에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면이 있었어요. 하지만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수현이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탄탄대로를 걸어온 사람이 내가 인정하기 싫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을뿐더러 마음을 숨기자니 더 드러나고. 또, 그에게 사랑하는 여자는 있고 답답하죠. 여러모로 수현이 입장에서 훈이는 진정한 첫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게 아픈 사랑이었어요. 실제로 정말 사랑이 깊으면 내 통제를 벗어난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 사람에 올인 하면 이거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내가 튀어나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연기 욕심이 많은 강소라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까?’ 늘 고민한다. 자신만 보이는 구멍을 어떻게 하면 메꿀지 생각하는 배우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건 남자 배우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지만, 여배우들은 캐릭터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거다.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고, 도와주는 일차원적인 캐릭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스토리와 개성을 가진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여러 캐릭터와 작품을 만나고 싶다던 강소라도 단 하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는 장르가 있다.
“공포물은 제가 보지도 못하고 촬영하면서 악몽을 꿀 것 같아서 힘들어요. 심리적으로 무섭게 하는 공포물은 괜찮은데 잔인한 장면이 과하게 나오는 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진혁 감독님도 ‘주군의 태양’ 찍을 때 악몽을 꾸셨대요. 저도 평소에 공포 영화를 보면 2박 3일을 꼬박 세거든요. 스릴러까진 하겠는데 공포물은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작품과 함께 성장해온 배우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지사. 강소라는 자신의 성장기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못난이 주의보’와 ‘닥터 이방인’에 이어 쉼 없이 오는 10월 방송 예정인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을 차기작으로 선정했다.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인기 웹툰을 드라마화 작품으로 캐스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미생’은 원작이 있다 보니 부담스럽긴 해요. 워낙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작품인 데다 퀄리티도 매우 좋고 제가 이 작품을 훼손시키는 건 아닌가 걱정돼요. 캐릭터 자체가 저에 비해 정말 완벽해요. 제 욕심일지 모르겠는데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선택했어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봐주세요.(웃음)”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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