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정우성 / 사진 : 호호호비치, 쇼박스 제공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임에도 청소년층에 그렇게 영향을 많이 미친 영화는 '비트'가 아마도 전무후무 할 거다. '비트'의 영향력은 관객들뿐 아니라 정우성에게도 컸나 보다. '비트' 이후 관객들이 8년 만에 정우성의 제대로 된 액션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지난 3일 영화 '신의 한 수'(감독 조범구)가 관객들과 만났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내기 바둑이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 헐리웃 로봇과 외계인들의 침공 등의 이유는 개봉 전 흥행에 대해 반신반의하게 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선택은 화끈했다. 개봉 4일 만에 '신의 한 수'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4년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보여줬다. 이 소식에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정우성은 두 마디 비명을 질러 현장을 폭소케 했다. "야호!"
정우성이 '신의 한 수'를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 바둑을 소재로 하는 영화지만 바둑을 모르는 정우성에게도 흥미로운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정우성은 '신의 한 수'를 선택한 뒤 주머니에 바둑알을 넣고 다니며 집에서도, 쉬는 시간에도, 심지어 술자리에서까지 착수(바둑돌을 바둑판에 두는 것) 연습에 돌입했다.
"바둑의 용어라든지 정서, 이런 것들을 얘기하면서 바둑을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착수를 가르쳐 주신 바둑 9단 고수분께서 바둑은 빨리 배울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바둑을 배우고 싶으면 동네 기원 가서 배우라고. 그래서 착수에 더 몰입했죠"
'신의 한 수'에 대한 정우성의 욕심도 남달랐다. '주님' 역의 안성기를 추천한 것도 액션 장면을 시나리오로 접하고 '감시자들'때 함께했던 최봉록 무술감독을 추천한 것도 정우성이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안성기 선배님께서 주님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적인 자리에서 '잘 봐주십사' 한 마디 던졌을 뿐이에요. 결국, 배우를 움직이는 건 캐릭터니까요"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몸으로 부딪히는 액션 장면에서 그는 부상 투혼도 마지않았다. "지금도 뼈 쪼가리가 왔다 갔다 할 거예요"라며 정작 자신은 쿨하게 밝혔지만 투박한 싸움꾼으로 거듭나는 '태석'의 캐릭터를 준비하는 그의 남다른 노력은 빛났다. 냉동창고 액션, 기원에서의 액션, 최후의 살수(이범수)와의 싸움 등 정우성은 '신의 한 수' 곳곳에서 '액션의 한 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꼽는 액션은 '딱밤'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로 볼 때 재밌더라고요. 위트있게 느껴지는 데 중요한 건 표현이잖아요. 글과 영상은 다르게 느껴지니까. 어떻게 표현할지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작가분께서 정말 심혈을 기울이셨다 느껴지는 게 바둑이 광활한 경우의 수 중 한 수를 두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신의 한 수'에서 액션의 시작을 딱밤을 때리는 손가락으로 연 게 굉장히 기발한 아이디어 같아요."
'신의 한 수'는 한 수의 시작을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처럼, 바둑이라는 정신적인 가치와 육체를 움직이는 액션을 교묘히 결합했다. 이에 대사 중에는 명언처럼 와 닿는 구절들이 많다.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이라는 대사도 그중 하나. 이에 남자로서도 배우로서도 자신의 위치를 잡은 것 같은 정우성에게 세상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했다.
"세상이 어려워요, 세상이 궁금하고요. 예전에는 몰랐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거의 촬영장에만 있잖아요. 제시간이 생겨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보자, 밥 먹자'하면 또 그들도 자신들의 생활이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세상과 섞일 시간이 자꾸 단절되더라고요. 세상이 궁금하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에 대해서 새삼스레 다시 느끼죠."
세상에 대해서는 고수도, 하수도 아닌 어린이다운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정우성은 20년을 지내온 촬영장에 대해서는 고수다운 면모를 보였다. 정우성은 "데뷔 때부터 너무 행복했어요. 오히려 데뷔 때 (촬영장이) 더 놀이동산 같은 느낌이었죠. 지금도 촬영장이 제일 행복하고, 제일 놓을 수 있는 곳 같고"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20년이란 세월을 지나며 정우성을 따르는 후배들도 많아졌다. 이에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죠"라면서도 "하지만 저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 누구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를 찾았던 것 같아요. 영향을 받는 건 좋은데 자기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성숙한 조언을 건넸다.
정우성의 배우로서의 고민이 느껴졌다. 그는 팬들과 대하는 스타의 모습에서도 이제는 익숙함이 묻어난다고 했다.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인들과 달리 팬들은 이미지화된 스타 정우성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여유롭게 서로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최근 출연한 예능 덕분에 이제는 초등학생 팬들도 등장했다. '신의 한 수'의 홍보차 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 팬들이 '영화 우리가 흥행시켜줄게요'라고 외쳤다며 웃음 짓는다.
정우성 역시도 누군가의 팬이었을까?
"늘 영화의 팬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영화의 팬이고. 극장에서 늘 꿈을 꾸거든요. 극장에서 동료들의 영화를 보며 저런 장면을 나는 더 멋있게 만들어봐야지라고."
그렇기에 정우성은 당당하게 자신의 '신의 한 수'는 늘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한다. 20년을 봐왔지만, 여전히 스크린에서 보는 배우 정우성은 도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정우성의 '신의 한 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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