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지환 / 사진: 와이트리 미디어 제공
웰메이드 드라마의 절대적인 기준이 시청률이 될 순 없다. 그럼에도 시청률을 운운하는 까닭은 비단 광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대의 최저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바통터치를 받아 그보다 6배 높은 12% 시청률로 꼴찌에서 1위로 화려하게 마감한 KBS 드라마 ‘빅맨’의 히어로 강지환은 ‘빅맨’ 그 자체였다.
“경쟁작이 해외 로케이션을 떠났을 때 우리는 재래시장을 전전했다”던 그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건 돈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는 소시민이 ‘정직’과 ‘노력’만으로 다 가진 권력층과 보란 듯이 마주하고, 불가능하기만 해 보였던 세상을 가능케 만든 스토리를 ‘빅맨’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진 것 없이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은 과연 올까. 이 실낱같은 희망에서부터 ‘빅맨’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었다.
극 중 강지환이 맡은 김지혁은 작품 초반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삼류 양아치 설정이었다. 잘못 표현하면 거부감이 들거나 보기 불편할 수 없는 캐릭터였지만, 강지환이 만들어낸 김지혁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유들유들하고 친근감 있는 인물로 시청자를 금세 내 편으로 만들었다. 캐릭터의 공감 포인트로 강지환은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시장 사람이 대그룹의 리더가 되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이해가 될까?”라는 점을 들었다.
“시청자가 김지혁이라는 캐릭터에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자전거 타고 가다 오열하는 신에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서럽게 울면서 만화적인 캐릭터 요소를 놓지 않았어요. 캐릭터에 힘을 주기 위해서요. 김지혁이라는 인물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나약한 인간이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갔기 때문에 시청자에 더욱 친근하게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서민적 히어로를 표현하기 위해 강지환은 직접 광장시장에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살던 청년이 좋은 옷을 입을 리 없다는 판단에 시장에서 세일하는 7~8만 원짜리 정장을 사서 입었다. 눈치채는 이 하나 없었지만, 강지환은 작은 부분 하나까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세심하게 신경 썼다. 철저한 준비 끝에 만들어진 캐릭터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에게 여유로운 인상을 안겼다.
“연륜이 차다 보니 이제는 대본 컨닝이 가능해요. 예전에는 대사를 외워야 하는데 대본은 쪽대본으로 나오고, 잠도 못 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하지만 요즘은 카메라 각도 라던지 편집 점을 알다 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해졌어요. 다만 진지한 감정 신을 연기할 때는 다른 배우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죠. 배우가 원톱으로 나왔을 때 결과가 안 좋으면 손해가 크잖아요. 그런데 저는 안 좋은 상황에서 시작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저한테는 이보다 더 값진 결과물이 없어요.”
배우가 되기 전 강지환은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고 회사 생활도 1년가량 했다. 배우의 꿈을 늘 품고 있었지만 남자라면 직장 생활을 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전공을 살려 사회 경험을 쌓게 됐다. 1년이 되는 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강지환은 30살 때까지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겠다는 각오로 뛰어들었고 29살 되던 해에 MBC ‘굳세어라 금순아’로 이름을 알렸다.
“말년 병장 때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몇 개월 전부터 별을 보면서 인생 설계를 했어요. 뭐 할까 하다가 막연히 꿈꿔왔던 배우를 해보잔 생각이 들었죠. 결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니 무명배우 생활을 오래 해서 가족들을 굶기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고 20대를 다 바치기로 했죠. 30살까지 주인공이나 배우로서 이름을 못 가졌다면 장사를 했거나 전공을 살려 디자인 계열의 다른 직장을 다녔을 거에요.”
강지환이 삶을 사는 내내 ‘인생 계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기 때문일 터.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강지환에게 팬들 역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뮤지컬을 할 때 엄마, 아빠, 친구 빼고는 날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공연이 끝난 뒤에도 주인공만 불려 나가서 사진을 찍잖아요. 당연한 건데도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았나 봐요. 어떻게 하면 주목받을 수 있을까 하다가 헤나를 몸에 그렸어요. 그때 대학생 팬이 두 명 생겼죠. 끝날 때쯤엔 5~6명까지 늘었어요. ‘강지환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팬 커뮤니티가 제가 가입함으로써 7명으로 시작했죠. 그런 기억이 있다 보니 팬들과 각별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1년 내내 작품을 하는 게 아니니까 중간에 빅뱅이든 누구든 좋아했다가 내가 활동할 때는 집합하라고 말하곤 하는 데 팬들을 팬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강지환은 작품을 통해 시대가 바라는 리더를 그려왔다. “배우는 연기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강지환이기에 그가 표현하는 리더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항상 매니저나 누군가가 챙겨주면 그렇구나 했었어요. 이번 작품으로 느낀 건 딱 하나 솔선수범. 내가 앞에서 보여주고 끌어주는 게 진정한 리더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로, 누군가의 형으로 대접받고 살았는데 이제는 후배들에게 베풀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미 월화극 판도를 휘어잡은 ‘기황후’ 때문에 엄두도 못 냈다가 김희애와 유아인의 격정 멜로로 지상파를 잡겠다던 ‘밀회’의 선전에 희생양이 될까 불안했던 게 강지환의 속내였지만, 그의 말처럼 “빅맨은 후반전에서 첫 골을 넣은 작품”이 됐다. 이제는 강지환이 출연하면 어느 정도의 작품성과 대중성, 공감할 만한 캐릭터가 존재할 거란 믿음이 자리한 가운데, 믿고 보는 배우의 다음 작품과 그가 만들어 낼 캐릭터에 시청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기작이나 캐릭터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둔 상태예요. 내심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이번 작품에서 했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는 정통 멜로나 감정을 눌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기 위해서 꼼꼼히 살펴보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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