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시대'에서 주인공 신정태 역을 열연한 배우 김현중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꽃보다 남자’(2009)의 지후 선배로 연기를 시작한 김현중(29)은 6년 차 배우다. 경력 기간이 무색하게 그는 최근 종영한 KBS2 ‘감격시대’(2014)를 포함해 드라마 세 편을 선보였고 영화는 아직 도전하지 않았다. 연기한 작품이 많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히트작은 데뷔작인 ‘꽃보다 남자’였다. 부드러운 남자로만 기억될 것 같았던 김현중은 ‘감격시대’를 만나 강한 남성미를 겸비한 새로운 캐릭터의 구축하고, 더불어 “캐릭터에 빙의되는 연기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극중 김현중이 맡은 신정태를 어떻게 설정했고 표현하려 했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전혀 다르게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현중은 “신정태가 과거에 어떤 엄마와 아빠 사이에 태어났고 아빠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떠올렸다. 또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그의 동생은 어디가 아팠고 그가 자주 거닐던 곳은 어디였고 누구와 교류했는지 신정태의 한 살부터 지금까지의 구체적인 것들을 매일매일 생각했다. 김현중이 신정태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슛이 들어가면 신정태가 됐다”며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을 섬세하게 준비했다고 했다.
김현중의 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신정태는 “부모 없이 자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존재인 동생마저 잃고 나태하게 살다 우연히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나를 왜 못 키웠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면서 복수를 하다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되고 사랑했던 여자마저 잃는, 인생으로는 최악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란 존재를 거부했지만, 결국엔 신정태도 가족은 못 지키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지키는 인물이 됐다. 김현중은 그런 신정태가 안쓰럽고 생각할수록 슬펐다고 했다.
처음엔 연기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감격시대’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신정태로 살고 싶다”고 느꼈고, 신정태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보잔 생각이 들어 철저한 캐릭터 분석을 했다. 배우들이 흔히 말하는 ‘진정성 있는 연기’도 김현중은 ‘감격시대’를 하면서 비로소 처음 느끼게 됐다. 김현중은 “캐릭터에 빙의된다는 말을 안 믿었는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는 슛 들어가면 눈이 돌아버리는 경험을 처음 했다. 예전에는 대사를 어떻게 치는지 내 귀에 들렸는데 이번엔 대사를 숙지하고 슛 들어가면 거기서부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게 정말 신기했다”고 말했다.
평단과 시청자의 호평을 이끌어냈던 오열신도 “왜 목이 메고 슬프고 답답한지 신정태의 모든 심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김현중의 각오와 “모든 오열신은 울어야지가 아닌 그 상황을 좀 느껴야지”라는 그의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특히 김현중은 “목련(진세연)이 죽을 때 말이 안 나오다 눈물이 맺히면서 대사에 없는 ‘안돼~’와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경험을 했다”며 “무당들이 신내림을 할 때 이런 느낌인가” 싶을 정도로 신정태에 푹 빠져 살았다.
◆꽃미남에서 배우로…"극단서 강간당하는 연기까지 해봐"
꽃미남 스타에서 배우로 가기까지 김현중은 “연기가 안 된다 싶으면 자질이 없는 것이니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다. 온 힘을 쏟아 부어도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으면 “끝내야겠다”는 비장함마저 했을 정도로 신중히 연기했다. 꿈을 꿀 때도 감격시대 꿈을 꿀 정도로 몰입했고, 연기에 대해 입체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가졌던 한류스타, 인기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김현중은 매일 아침 9시, 신정태의 똑같은 옷을 입고 연극배우 사무실을 찾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그는 극단에서 창피함을 떨쳐내는 다양한 연기를 접했다.
“연극배우 선생님이 정태의 여동생인 청하가 강간당하는 연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사람들 앞에서 여자 흉내를 내며 연기한다는 게 되게 창피해서 처음엔 잘 못했다. 선생님도 남자셨기 때문에 ‘잘했다’고 평가하기보다 ‘이때쯤 치마가 찢어지지 않을까’라며 감정을 공유해주셨다. 강간당하는 연기뿐만 아니라 물구나무서서 토하는 연기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하면서 나 자신을 떨쳐내고 백지로 만든 상태에서 신정태를 대입했기 때문에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 편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감정 연기와 달리 액션은 현장에서 많이 배웠지만 “나랑 잘 맞는구나”라고 느꼈을 정도로 재미와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김현중은 “액션도 또 하나의 감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싸울 때는 액션의 세기와 공격의 위치가 달라지고, 눈빛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끄집어냈다.
남자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던 김현중은 ‘감격시대’를 그 스스로 직접 선택했다. 출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근본부터 신정태에 빠져나갈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때는 그때의 나름의 100%를,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100%를 했는데 그 당시보다 6살이 많아졌기 때문에 내가 뭘 보고 배웠는지에 대한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어른이 됐으니 어른답게 연기했다. 내 생각에 연기를 잘한다는 건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덤덤한 자기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언제까지 꽃미남일 수도, 언제까지 상남자일 수도 없다. 김현중은 “틀 안에 나를 가둬두고 싶지 않다. 작품이 끝나면 조용히 없어지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시청률 1위도, ‘김현중의 재발견’이라는 떠들썩한 호평 기사도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칭찬에 휘둘려 들뜨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던 김현중의 말이 겸손해 보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이끌어갈 20대 배우의 덕목에 성실함과 겸손이 이렇게 자리해 있다면,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현중의 다음 행보가 진심으로 기다려지고 궁금해졌다.
“저는 사람들한테 아무 이미지가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없는 듯 있는 그런 사람? 지금은 시나리오를 몇 개 보고 있긴 한데 아직은 선택하기 싫다. 너무 쏟아내서 나 자신에게도 여유를 주고 싶기도 하고 내 열정이 100%가 됐을 때 다시 도전하고 싶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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