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배우,엄마 그리고 누나' 김희애의 우아한 거짓말
기사입력 : 2014.03.23 오전 10:02
'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 사진 : 무비꼴라쥬 제공

'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 사진 : 무비꼴라쥬 제공


김희애가 울었다. '우아한 거짓말' 언론시사회에서 자신이 나온 작품을 처음으로 마주한 그녀는 취재진 앞에서 다음 말을 못 이을 정도로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이유 속에는 '배우' 김희애도, '엄마' 김희애도 있었다.


"제가 했던 게 어떤가 모니터를 혼자만 해요. 제가 한 연기를 다시 보는 게 괴롭고 힘들어요. 한 번은 다시 봐야 하는데 드라마는 혼자 볼 수 있는데 영화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 연기에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어서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었는데 후폭풍이 왔나 봐요."


16살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31년째를 맞고 있는 배우 김희애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그 나이 또래를 지나고 있는 혹은 지나온 김향기, 김유정, 고아성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밝게 인사하고 그랬다가 해야 할 때는 또 완벽하게 집중해서 연기해낸 게 너무 고맙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감동적이고요. 그 아이들이 제 아이들 나이거든요, 우리 애들은 정말 애예요. 철딱서니 없고 저보다 큰 아기. 비슷한 나이인데도 감정 컨트롤해서 연기를 해낸 게 감동적이고 너무 대견하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데뷔했던 자신에 비추어 김희애는 어린 시절에 연예활동을 시작하는 걸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나이 또래에 해야 할 일들을 젖혀둔채 어른들의 세계를 앞서 경험하는 게 마음의 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이유였다. 하지만 김희애는 '우아한 거짓말' 작업을 하면서 요즘 친구들은 오히려 배울 점도 있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놓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잘살고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고 마치 자신의 딸인 듯 자랑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엄마였다. 김희애는 계속해서 칭찬해온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의 이야기를 자기 아들들에게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말해 뭐해요, 다 잔소리로 들리고 남의 딸 이야기하면 스트레스나 받죠. 결국은 자기가 깨우치고 성숙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애들이 엄마 얘긴 안 들어요, 친한 형님이 해주면 알아들으려나?"라고 쿨하게 엄마 말투로 답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김희애는 막내 천지(김향기 분)을 앞세워 보내고 맏이 만지(고아성 분)과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억척 엄마 현숙 역을 맡았다. 자식을 앞세웠지만 "세 명분으로 힘차게 살 거니까, 잘 먹자"라고 만지를 앞에 두고 오바스럽게 씩씩한 목소리를 내는 엄마다. 자식을 키우는 처지에서 자식을 앞세운 엄마 역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는 대본 하나에, 소재 자체가 지닌 소중한 의미에 합류를 결정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고, 배우로서도 너무 힘들어서 이런 건 피하고 싶어요. 그런데 '우아한 거짓말'은 아이를 잃은 아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사는 동안 어떤 사건을 거쳐나가면서 성숙해가고 발전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김희애는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자신의 여러 장면을 제치고 극 중 만호(성동일 분)의 두 딸을 불러서 저녁을 함께 먹는 장면을 마음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 장면에서 김희애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워할 필요도 없고 미우면 미운 대로 사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희애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사는데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있고 다 싫어하는 사람만 있겠어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흘러가면서 그렇게 나이가 드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작품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김희애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처음으로 아들들에게 '우아한 거짓말'을 보라고 권했다.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부분인데 강압적으로 칠판에 놓고 가르쳐줄 부분이 아니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던가 마음가짐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라고 했어요. 꼭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아들들이 은근히 마음이 여려서 너무 슬프게만 이야기하면 가슴 아파할 것 같은데 '우아한 거짓말'이 돌아서 따뜻하게 쓰다듬는 얘기라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김희애에게 '우아한 거짓말' 이후 사람들에게 느낀 바를 실천해본 적 있냐고 물었다.


"갑자기 일이 확 몰려서 드라마('밀회')도 하게되고 영화 홍보도 하고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죽겠어요. 그런데 바꿔말하면 백화점 가서 옷 사 입고 갈 데가 어딨어요, 불러주시면 감사하죠. 이왕 나오는데 '힘드시죠'라고 누가 물어보면 일부러 '하하하하'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왜 저러냐 안 그래요. 저 사람이 힘든데도 그러는구나 다 알아요.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즐겁게 대하면 저도 행복해지고 자꾸 그런 것도 노력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용기가 뭐예요. 그게 용기죠. 살면서 불의에 대항하는 용기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주위 사람 기분 맞춰주고 배려해주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여배우 중 '우아하다'는 수식어를 이렇게 오랜 시간 지닌 여배우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말에도 "저 우아해요, 이러면 정상이에요? 광고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너무 예쁘게 만들어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잘 관리해서 제가 배우의 생명도 좀 길게 가져가면 후배들에게도 좋은 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쿨하게 하지만 진심을 눌러 담아 답한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요, 아침에 '오늘도 열심히 해야지!' 이러고 나와요.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맡은 작품에 최선을 다하면 제 커리어도 차근차근 쌓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일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너무 느끼고 있어요. 좀 길게 가려고요.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분들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로도 되고, 친구도 되면 좋잖아요? 저도 제가 살던 시대의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면 반갑고 여전한 모습을 보면 좋고 망가진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이런 것처럼요. 그래서 배우로서 자존심을 잘 지키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김희애라는 이름을 들으면 반가움이 앞선다. 그녀가 억척스러운 엄마가 되어 스크린에 등장할 때도, 우아한 모습으로 미모를 과시하는 광고 속에서도, 20살 연하남과 진한 멜로를 선보이는 안방극장에서도 대중들은 김희애를 '놓칠 수 없다.' 그래서 그녀의 말처럼 공감대와 함께 위로를 주는 배우로, 때로는 익숙한 친구로, 이따금 꽃보다 아름다운 누나로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소망이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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