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만지 역의 고아성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오늘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당신, '잘 지내나요?'
이만큼 강렬한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없다. 우아한 거짓말 중인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었기 때문일까? 고아성은 다시 찾아온 빙하기 속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설국열차')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벗은 후 서울 한 소박한 가정의 '우아한 거짓말'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한 열 네 살의 소녀 천지(김향기 분)의 죽음에서 시작해 동생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언니 만지(고아성 분)가 동생의 흔적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예민한 포인트가 있다. 은따(은근한 따돌림)이라는 설정과 가족의 자살이다.
이에 고아성도 처음 '우아한 거짓말'을 마주했을 때 '만지'역을 거절했었다 말했다. "꼭 경험이 있어야 그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진정한 사랑을 해본다거나, 아이를 낳아보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이런 감정은 상상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아성이 '만지'가 되기까지는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영화 같은 일주일'이 있었다. '우아한 거짓말'을 거절한 후 일주일 동안 고아성은 매일 밤 꿈에서 가족 중 한 명 혹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어야했다. "너무 생생한 느낌이었어요. 자고 일어나면 매일 '엄마가 없지…'라는 생각을 새롭게 해요." 꿈속에서 고아성은 처음에는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거부를 했다. 그다음에는 좀 안정을 취하며 그래도 씩씩하게 산 사람은 살아가야지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다가는 최근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며 '신이 분명히 어딘가에 복선을 보내줬을 텐데 내가 놓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고는 상대가 죽어야 했던 개연성을 찾아 헤메었다.
실제 고아성은 가족의 죽음을 아직 경험한 적이 없다. 또 그는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왕따나 은따 이런 게 없었거든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꽤 괜찮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바쁜 아역배우 생활 중에도 학교 수업에 성실하게 임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만지와 천지와는 전혀 교차점이 없다. 고아성 역시 "개인적인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 포스터 / 사진 : 무비꼴라쥬 제공
하지만 관객은 '만지'가 된 고아성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때는 정말 영화 같은 일이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우아한 거짓말'을 정말 하고 싶어서 제가 억지로 만들어낸 경험 같기도 해요. 꿈을 꾸고 책을 봤다고 만지에 자신이 생긴 게 아니라 내 한 몸 던져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고아성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리만큼 뻔한 소재잖아요. 왕따 소녀의 자살이야기. 소재는 많이 다뤄진 것 같은데 풀어가는 방식이 제목 그대로 우아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이 리뷰 제목에 '뭔가 조금 다른 영화'라고 적혀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고아성은 덤덤하고 쿨한 만지를 실제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고아성이 꿨던 꿈처럼 만지는 신이 보냈을지 모르는 동생 천지의 죽음에 대한 복선을 찾아 덤덤히 시간을 되짚어갔다. 하지만 단 한 장면 만지가 오열하는 모습이 있다. 시크하고 쿨하게 눌러온 감정을 천지가 남긴 유서를 보고 터트리는 장면이었다. "너무 오열로 가면 촌스러울 것 같았어요. 천지가 남긴 말에 최대한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지가 처음으로 애처럼 엉엉 우는데 컷이 길지가 않고 짧아요.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의도를 하셨고요."
만지에 더욱 몰입하게 해 준데 고아성은 김향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처음 향기를 봤을 때 영화에 나오는 교복이 아니라 자주색 니트로 된 조끼를 입고 나오는 걸 봤어요. 그런데 옛날 제 모습이랑 너무 똑같아서 신기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원래 내 동생이 있었는데 지금 내 동생이 죽고 없다' 이렇게요. 실제로는 동생이 없거든요. 있지도 않은 동생이 죽어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향기는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저랑 워낙 닮기도 했고."
고아성의 일주일간의 꿈이 자신을 통해 스크린에 그려졌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자신의 연기에 100점 만점에 3점이라는 점수를 줬다. "너무 궁금한 점이 있어요. 배우들은 자기 연기에 얼마나 만족하고 사는지. 이번 영화를 하면서 유난히 욕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올해 계획을 묻자 고아성은 "다음 작품도 못 정하고 있어요"라고 고민스레 답했다. "모르겠어요, '우아한 거짓말' 생각밖에 안 들고요,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고아성은 '우아한 거짓말'을 본 뒤 지난 학창시절에 반에서 말이 없던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고, 영화가 끝났는데 그 이름도 모르는 친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라 순간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하고 싶느냐 묻자 "그냥...잘 지내는지"라고 수줍게 답한다.
인터뷰 말미까지 고아성은 '우아한 거짓말'에 대해 "좋은 의미로 얘기하고 싶은데 연기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의미라고 하면 너무 큰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최근 '변호인'의 마지막 스크린 시사 당시 송강호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되뇌었다. 당시 송강호는 "요즘 집에서 혼자 곰곰이 시간을 보낼 때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길고 벅찼던 3개월을 떠올리곤 한다"라며 "그렇게 아직은 '변호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고아성은 만지인 듯 본인인 듯 덧붙였다. "송강호 선배님 말에 되게 감동을 했거든요, 그 말씀처럼 영화를 잘 떠나 보내는 것도 마지막 임무인 것 같아요."
한편, 고아성이 만지가 되어 동생 천지의 죽음을 되짚어가며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감성을 뭔가 다르게 전달해 줄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오늘 13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난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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