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인터뷰] 김지원이 캐릭터에 접근하는 법 “유라헬은 악역이었을까?”
기사입력 : 2014.01.06 오후 6:24
배우 김지원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mintstudio.com

배우 김지원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mintstudio.com


악역이라고 다 똑같은 악역일 수 있을까. 캐릭터가 처한 환경에 따른 차별점과 그 캐릭터에 접근하는 배우의 방식에 따라 같은 캐릭터라도 전혀 다른 인물로 탄생될 수 있다는 건 이미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아온 요즘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격정 하이틴 드라마 ‘상속자들’에는 여타 드라마보다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연기 내공이 두터운 배우라도 살아남지 못할 작품이었다. 치열한 전쟁과도 같았던 이 작품에서 연기 3년 차 배우 김지원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주목받았다.


김지원이 RS 인터내셔널 상속자 유라헬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완벽하게 소화해낸 데는 캐릭터를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유라헬을 ‘가난 상속자’ 차은상(박신혜)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봤지만, 유라헬을 연기하는 김지원만큼은 불쌍한 아이로 생각했다.


“저는 라헬이가 불쌍했어요. 어떤 분이 댓글에 ‘김탄(이민호)은 잘못한 게 없다’고 남기셨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탄이도 제국 그룹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고 라헬이와 약혼했고, 제 덕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라헬이를 차버린 거잖아요. 또 친엄마한테도 상업적으로 이용 당한 거고요. 정말 불쌍했어요.”


라헬이에게 마음이 쓰였던 장면 중 하나는 '상속자들' 14회 속 차은상(박신혜)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다. 시청자들은 차은상의 교복을 버린 유라헬의 어긋난 행동만을 지적했지만, 김지원은 조금 다르게 봤다.


"라헬이는 이미 은상이에게 '졸부라고 소문내기 전에 전학 가'라고 기회를 줘요. 차갑고 이기적인 라헬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죠. 기회를 충분히 줬고 교복을 태운 것도 아니고 버렸는데 뺨을 맞다니 가여웠어요. 뿐만 아니라 라헬이는 은상이를 때렸다고 직접 탄이에게 말하는데 자신이 맞았다는 건 탄이가 모르잖아요. 라헬이가 은상이를 때린 것만 보고 '여자는 못 때리는데 마음속으로는 이미 너 때렸다'고 말하는 탄이의 말에 시청자들도 잠시나마 라헬이를 불쌍하게 생각해주실 줄 알았어요."


부모에게도 사랑하는 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비운의 캐릭터' 유라헬을 연기하는 몇 개월 동안 김지원의 마음이 꽤 쓸쓸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유라헬을 연기하며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봐서 속 시원했다"며 쿨 한 반응을 보였다.


“라헬이 캐릭터에 있어 아쉬운 점은 없어요. 전개상 많은 캐릭터가 나오는데도 라헬이의 감정선을 작가님께서 잘 살려주셨고, 라헬이도 자기주장을 똑바로 얘기하는 캐릭터다 보니 연기하면서는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친구들도 예전 캐릭터들은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휘젓고 다니는 인물이라 더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한가지 안 좋아진 건 초등학생들이 이제는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만난 꼬마가 ‘언니 은상언니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말해서 충격받았어요.(웃음)”



‘김지원=유라헬’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낸 데는 김지원의 영특한 분석력이 큰 몫을 했다. ‘상속자들’ 오디션에서 김은숙 작가가 가만히 앉아있는 김지원을 보고 유라헬을 떠올렸을 만큼 차가운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있긴 했지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를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요구에 충족할 수 있었던 건 김지원이 말투와 행동, 보이는 이미지까지 완벽하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김은숙 작가님이 극 초반 전파를 탔던 미국 촬영분을 보시고 ‘넌 이런 거 되게 잘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작품이 끝난 후 열린 종방연에서는 제가 신발을 신고 있는데 엉덩이를 두들겨 주시더라고요. 그 어떤 말보다 더 좋았죠.”


라헬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 김탄, 그리고 시작은 차가웠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지켜주려는 영도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가난 상속자’ 차은상과 부유한 삶을 타고났지만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유라헬.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캐릭터를 놓고 김지원에게 또 한 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막말로 라헬이는 돈만 있는 친구고 은상이는 돈 빼고 다 있는 캐릭터잖아요. 만약 '둘 중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한다면 저는 은상이를 택할 거에요. 제가 이 질문을 저희 언니한테 했더니 라헬이는 돈과 인맥이 있으니 성격만 죽이면 된다더라고요.(웃음) 언니 말에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탄이와 영도의 사랑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면 은상이의 삶이 더 좋지 않을까요?"


캐릭터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배우만큼 기대되는 배우가 없다. 그런 점에서 김지원의 향후 행보에 더욱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유라헬 캐릭터로 김지원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가 새롭게 만나고 싶은 캐릭터와 장르는 무엇인지 김지원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장르는 로코(로맨틱 코미디)나 스릴러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역할은 로코에 나오는 푼수 같은데 사랑스러운 역할을 맡아보고 싶어요. 그 동안 완벽을 추구하는 캐릭터만 해와서 그런지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를 차기작에서 만나보고 싶어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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