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박해일 "전 국민이 아는 위인 연기…서 있는 것조차 부끄러워"[인터뷰]
기사입력 : 2022.08.12 오후 5:15
박해일 인터뷰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해일 인터뷰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해일이 지혜로운 장수 이순신을 스크린에 그려냈다. 김한민 감독이 그리고 있는 이순신 3부작 중 '한산:용의 출연'(이하 '한산')의 주인공을 맡아서다. '한산'은 지난 2014년 개봉한 '명량' 이후 8년여 만에 나온 속편. 게다가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 성적, 1700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의 프리퀄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극 중 박해일은 문무가 모두 수려한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거친 장수의 모습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내적 에너지를 가진, 은은하지만 단단한 매력이 있는 인물을 선보여 호평을 이끌고 있다.

Q. 이순신을 직접 연기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을 것 같다. 이순신을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했나.

시대마다 이순신을 그리는 느낌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제가 모든 걸 다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보통은 장군으로서의 기개 있는 면모를 다뤘던 것 같다. 저는 이번 '한산'에서 무인이지만 붓도 잘 어울리는 '군자스러운 무인'으로 이순신을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감독님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고, 드러날 듯 말 듯 한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다.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나는 것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어서 세밀한 전략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혼자 있는 공간에서 하는 고민들, 그런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순신 장군님은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분이셨다고 하더라.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명령을 하시고, 시의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분이실 거라 생각했다.

Q. 해상신을 촬영할 때는 거대 세트장에서 찍지 않았나. 현장에 섰을 때 기분도 남달랐을 것 같다.

일단 저는 숨이 멈췄다. 막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희가 여수에 오픈 세트를 2만 평으로 짓고 거기서 촬영을 했다. 장수가 맨 위에 올라가서 지휘하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서있으면 모든 게 잘 보인다. 전투를 지휘하기에 좋은 공간이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전후좌우 모든 스태프들, 주민들도 저를 보고 있었다. 그 부담감은 실로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아는 위인을 제가 연기한다고 하니 서 있는 것조차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Q. '한산' 속 이순신은 굉장히 진중하고, 말수가 적은 인물이지 않나. 실제로도 극 중 내적 에너지가 강한 인물로 그려졌는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대사가 많이 없구나 하시는데, 맞다. 배우가 1차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가장 효율적인 게 대사다. 이번에는 표정과 눈빛에 중요한 감정을 담아서 실어 보냈다.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도 하나의 대사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했다. 기존과 결이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순신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이순신의 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제 안에 담긴 기운을 한 번에 응축해서 해냈어야 했다. 이번에는 더 깊이 있게, 그리고 한 번에 넓게 전달해야 하는 방식의 연기를 해볼 수 있었다.

관객분들께서는 어떻게 보실지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이순신 장군님의 그 기운을 항상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시기적절한 감정을 운용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연기를 안 하는 데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이되, 연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부분을 균형감 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 있나.

이순신 장군님이 꿈을 꾸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이 결정적으로 학익진 진법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장군님께서 실제로도 꿈을 많이 꾸고 기시감이 엄청나다고 하더라. 그걸 가지고 점괘도 보셨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찰력만큼은 대단하셨던 거다. 저는 그저 한산대첩을 준비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눈빛과 표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여기서 끝장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전투는 훌륭하게 보여질테니 나만 배우로서 해야 하는 것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Q. 한여름에 촬영을 시작해 갑옷에 투구까지 입고 촬영했어야 했다. 힘든 점은 없었나.

날씨와 육체적인 힘듦은 기본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왜군, 조선군, 의병으로 나온 2~300 명의 단역 분들이 계셨다. 전투를 하다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연기하셔야 했다. 그 더운 날에 말이다. 그분들과 함께 찍다 보면 '내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 분들 앞에서 과연 내가 맡은 역할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심정을 끝날 때까지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여느 작품 때보다도 더 컸다.

Q. '명량' 속 최민식에 이어 이순신을 연기했다. 처음 김한민 감독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땠나.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됐고, 거절도 했었다. 김한민 감독님께서 '너는 최민식 선배님 같은 용맹스러운 장군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아주시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한산'에서의 이순신은 젊은 지략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감독님 말씀이, 수군들과 지혜롭게 전투를 해서 승리로 이끄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 부분을 할 때 제가 어울릴 것 같다고 한 마디를 해주셨다. 그래서 감독님과 '붓과 활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함께 한 경험이 '한산'의 이순신을 그리는 데 많이 도움이 됐다.

Q.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헤어질 결심'에 이어 김한민 감독의 '한산'까지, 올여름 스크린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다. 소감은 어떤가.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보면 좋겠는지, 관전 포인트를 꼽자면.

때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장군감'이라는 소리도 못 들어본 제가 장군을 하다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한산'을 통해 관객분들께서 '이순신이 이 시대에 갖는 의의'를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매 시기 우리는 이분의 작품을 문화적으로 다루고 기념하고 있지 않나. 시대에 따라 장군님의 기운을 보여주는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항상 동일시되는 건 '화합' 같다. 모든 국민에게 그런 의미를 주는 존재이신 거다. 영화 '한산'을 보실 때는 그 자체를 즐기시면서 스트레스도 푸시고, 더위를 날리실 수 있는 액션 전투를 보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순신 장군님의 비장함을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글 에디터 이우정 /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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