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윤여정 "내 나이에 감사해…나로 살다 죽을 것"[인터뷰]
기사입력 : 2022.03.27 오전 8:01
윤여정 화상 인터뷰 / 사진: 애플TV+ 제공, '파친코' 예고 영상 캡처

윤여정 화상 인터뷰 / 사진: 애플TV+ 제공, '파친코' 예고 영상 캡처


윤여정이 또다시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했다. 출연작 '파친코'가 공개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호평을 받고 있는 것.

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는 위험한 사랑에서 시작해 약 70년에 걸쳐 펼쳐지는 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윤여정은 극 중 노년의 '선자' 역을 맡았다. 선자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와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 수많은 대서사를 몸소 겪고 난 후의 모습이 바로 윤여정이 연기하는 노년의 선자다.

'미나리'에 이어 '파친코'를 통해 글로벌 스타로 쐐기를 박은 윤여정과 작품 공개 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파친코'가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 그리고 '자이니치'의 삶 등 역사적인 사실을 담았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또 캐릭터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엄마가 일제강점기를 살았어요. 제가 해방 2년 후에 태어났거든요. 47년생이라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배웠어요. '자이니치'라고 하는 말이 재일교포를 말하는데, 저는 혹시나 '자이니치'가 그 사람들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건가 생각했어요. 극 중에서 제 아들이 실제로 자이니치였어요. 자기는 너무 감동했다면서 '자이니치라는 프라이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해방 후에 6.25가 나는 통에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랬던 거죠. 예전에 듣기로는 자이니치가 조총련, 이북쪽 사람들이라고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말을 배우려면 조총련 학교를 갔어야 했다더라고요. 사상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재일동포지만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저도 이번에 배우고 드라마 찍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Q. 선자가 영도 바다에 뛰어드는 신에서 깊은 애환이 느껴졌다.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이 신이 없었어요. 내가 아주 죽겠어요. 늙은이가.(웃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 신이 있는 걸 봤는데, 그 여자가 고향으로 돌아와보고 싶지 않겠나 싶었거든요. 이건 참 잘 넣었다. 참 각색 잘 했다 생각했어요. 9살에 물질 배우러, 당돌한 계집아이가 물에 뛰어드는 그 신이 있잖아요. 그랬던 여자가 영도 바다를 보자마자 뛰어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면서 '이거 굉장히 좋다' 했죠. 너무 좋다 했는데 저스틴 전이 갑자기 비를 뿌리겠다고 하더라고요. 나 혼자서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어요. 70년 만에 고향 바다에 들어가면 어떨까 상상을 하면서 (촬영에) 들어갔는데, 비를 막 뿌리니까 막상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웃음)

Q.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기가 있지 않았나. 타국 생활을 하는 선자를 보고 공감이 되기도 했을 것 같다.

저와 선자는 상황이 너무 달랐죠. 저는 미국에서 일은 안 했어요. 살라고 일 한 건 아니었고, 이혼을 한 후에 생계 때문에 일을 많이 했던 거죠. 내가 살아보니까 막 살려고 일을 할 때는 이게 힘든 건지 아닌 건지도 몰라요. 그냥 선택지가 없으니까 할 뿐이죠. 힘든지도 모르고 하는 건데. 선자는 남편이 감옥에 가고 그런 상황이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김치를 만들어서 파는 것밖에 없었을 것 아니에요. 그게 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일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미국에 살 때도 남쪽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내가 뭘 했겠어요. 친구들이 미국 사람인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저를 잘 도와줬어요. 저는 거기 있을 때 인종차별 그런 거 하나도 못 느꼈어요.

저는 '미나리'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다 우리 아들 같은 마음이 있어요. '미나리' 아이작을 보면서도 제 아들과 같은 상황이라 그가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면 내가 마음이 움직여요. 국가적인 프로젝트라 했다던가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Q.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출연 당시 경상도 사투리가 어려웠다고 했었다. 이번에도 사투리를 소화하셨는데 어땠나.

그때는 사투리를 배우느라고 연기를 망쳤어요. 사투리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까요. 이우정 작가한테 물어봤더니 사투리는 거기서 태어나지 않으면 못 한대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포인트만 줘서 해야지, 원주민처럼 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거 신경 쓰느라 내가 연기를 못 하겠어서 그냥 '뉘앙스를 살려야지' 싶었어요. 선자는 늙기도 했고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라 사투리를 잊었겠죠. 이상한 악센트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투리에 관해서는 건들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죠.(웃음)

Q. 한국계 미국인 진하 배우와 조손 관계로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우리 진하가 아주 똑똑하고 철학적이에요. 재밌었던 건, 진하가 코리안 아메리칸이니까 아들한테 물어봤어요 진하에 대해. 그랬더니 아메리칸 연속극이 하나 있었는데 진하 하나만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정보를 가지고 나서 첫 신에서 만났는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배우는 키도 크고 핸섬하고 이민호같이 생겨야 하는데, 얘를 보는 순간 왜 이렇게 조그맣고 핸섬하지도 않은 얘가 있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배우는 배우끼리 알아요. 첫 신을 하자마자 '쟤 잘한다' 싶었어요. 얘가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는데 연기는 마스터할 수가 없어요. 그냥 얘 엄마, 아버지가 제 이름을 들어봤다 하는 거지 제가 마스터는 아니죠.

Q.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했다고 들었다.

왜 그런지 말할게요. 저는 너무 힘들게 살았고 해서 얘네들처럼 심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난 쉬는 시간에 그러는 게 멍청해 보여요. 내가 웃고 싶고, 진짜 릴랙스 하고 싶지. 어떤 배우는 쉬는 시간에도 감독하고 토론하고 하는데 액팅은 토론이 아니에요. 난 그런 걸 싫어하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웃었으면 좋겠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날 싫어하지만 또 누구는 그래서 나를 좋아하기도 하죠.

Q. '미나리'부터 시작해서 '파친코'까지, 윤여정 배우의 힘이 K콘텐츠를 이끄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K콘텐츠가 저를 통해 돌아갈 일은 없어요.(웃음) 그냥 소설 자체도 그 여자가 늙었기에 했던 거고. 처음에 이 작품 들어갈 때는 여러분이 저에게 관심이 없을 때였어요. 비포 아카데미였죠. 그 전에 먼저 찍었거든요. 콘텐츠가 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는 생각 안 했고, 저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에요.(웃음)

Q.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하시고 난 후 일상도 궁금하다.

저는 달라진 게 없어요. 똑같은 친구랑 놀고, 똑같은 집에 살고 있어요.(웃음) 제가 진하 나이 때 아카데미를 탔으면 둥둥 떠다녔을 거예요. 정말 내 나이에 감사해 보긴 처음이에요. 나도 늙는 게 싫은 사람인데 아카데미인지 오카데미인지를 30대쯤 탔더라면 붕붕 떴겠죠.

그 상을 받는 순간에는 기쁘죠. 하지만 그 상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나로 살다가 죽을 거니까. 나는 정말 운이었어요.

글 에디터 이우정 /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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