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터뷰]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말하는 배우 천우희
기사입력 : 2021.05.08 오전 12:10
'비와 당신의 이야기' 천우희 인터뷰 / 사진: 키다리이엔티, 소니픽쳐스 제공

'비와 당신의 이야기' 천우희 인터뷰 / 사진: 키다리이엔티, 소니픽쳐스 제공


천우희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가 평범하고 잘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재능' 그 자체였으나, 배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범함 속에 깃든 가능성이 배우 천우희를 만들어낸 듯했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개봉을 앞두고 천우희와 화상으로 만났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영호와 소희의 이야기이자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 이들이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 감성 무비다. 극 중 천우희는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여느 청춘 '소희'로 분했다. 엄마가 운영하는 헌책방 일을 도우면서 아픈 언니 '소영'을 살뜰히 챙기는 소희는 언니 앞으로 온 편지에 답장을 보내며 일상의 활력을 얻는다.

Q. 소희는 당돌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첫사랑의 아이콘처럼 순수한 캐릭터다. 실제 천우희 씨와 소희의 닮은 점, 다른 점이 있다면.

당돌하지만 날카롭지 않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본인의 이야기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날이 선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소희는 제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저와 결이 비슷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소희는 저보다 더 얌전한 스타일인 것 같아요.

Q. '멜로가 체질'과는 또 다른 결의 청춘 캐릭터를 연기했다. 소희를 연기하시면서 배우 천우희의 어떤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나.

'멜로가 체질' 때에는 갓 서른을 넘기기 시작한, 자리를 잡아가려고 하는 청춘을 연기했다면 이번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춘이에요. 청소년기를 떼고 진짜 성인으로서 자유를 얻게 된 거라 소희를 연기하면서 풋풋함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죠. 지금 상황에 나름대로 굴하지 않고 씩씩한 모습을 담으려고 했어요.

Q. 소희는 어떤 꿈을 가진 캐릭터라고 이해했나.

소희는 모든 출발이 가족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한테 얘기할 때도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게, 그 꿈의 출발도 쌍둥이 언니가 아프면서 그걸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영호는 자신의 꿈을 찾고, 엄마도 엄마의 꿈을 찾으러 갔잖아요. 소희 입장에서는 가족들을 보필하고 내가 다 받아주고 포용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꿈이었던 것 같아요. 묵묵하게 엄마가 남겨준 책방을 유지해나가는 게 꼭 꿈을 포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극 중 영호와는 편지로 소통한다. 직접 만나지 않아서 연기적으로 감정적 교류를 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또, 소희가 편지를 거꾸로 쓰곤 하는데 천우희 배우가 직접 쓴 건지?

어려울 수 있겠다 싶기는 했어요. 하지만 최대한 상대방을 상상하는 게 가장 주된 큰 목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들이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내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떨까. 어떤 글을 써줄까 하는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정선을 잡는 것에 노력했다기보다느 상상력이 필요했죠.

하늘 씨는 글씨를 직접 쓰셨는데, 저도 처음엔 설정에 맞게 제가 쓰는 연습을 했어요. 저는 손글씨 인강도 신청해서 듣고, 만년필로도 써봤는데 거꾸로 쓰는 것도 연습을 했어요. 직접 써서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감독님이 다른 전문가분을 부르시더라고요.(웃음)

Q. 시사회에서 강하늘 씨가 천우희 배우에게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강하늘과의 첫 호흡은 어땠나. 현장 분위기는?

강하늘 씨와의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았어요. 연기를 서로 주고받는 게 아니어서 케미랄 게 없었어요.(웃음) 공간 자체가 따로였어요. 현장에서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홍보하면서 모습을 보니까 하늘 씨가 리액션이 좋은 친구더라고요. 저도 상대방에게 잘 맞추려고 배려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서로 잘 맞아서, '이 친구가 흡수를 잘하는구나. 마음이 열려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Q. 극 중 영호는 소희를 '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는데, 그렇다면 소희에게 영호는 어떤 존재였을까.

저도 단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호는 소희에게) 항상 반복되고 지치고 무료할 수 있는 일상에서 한 번씩 소나기처럼 싹 내려주는 존재이지 않을까 싶어요. 나름의 소소한 활력이 되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Q.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기다림의 이야기이자 청춘의 이야기인 것 같다. 요즘처럼 속도에 민감한 대중에게 어떤 점을 어필할 수 있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요새는 빠르고 직접적이잖아요. 표현도 그렇고, 연락도 그렇고요. 작품 속 결을 보면 기다림도 있고 설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다 보니까 콤팩트하게 느껴지는데 방식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이런 감성을 하나하나 짚어준달까, 오히려 곱씹을수록 좋게 느껴지는 게 있어요.

Q. 실제 천우희 배우의 20대는 어땠나.

제 20대는 정말 평범하고 심심했어요. 연기 시작 전에는 더 그랬죠. 20대에는 연기가 더 재밌게 다가오고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꿈에 대해서 확실해졌다는 게 제 자신에게 놀랐어요.

저는 20대에는 커다란 꿈과 목표가 없었어요.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살았는데, 연기를 하게 되면서 어떤 목표가 생긴 것 같아요. 제가 굉장히 좀 파고드는 성격이거든요. 요즘엔 고민이 크게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엔 잔 걱정들이 많았는데 말이죠. 나보다도 상대와의 관계나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저에게 집중하는 거에 초점을 잘 맞추고 있는 것 같고, 딱히 고민이라고 하면 건강관리가 아닐까 싶어요. 최대한 체력 관리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에요.(웃음)

Q.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코로나 시국에 더욱 와닿는 작품인 것 같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지?

대본을 읽으면서 저도 처음엔 관객의 마음에서 보다 보니 두 사람이 만나게 될지 기대하고 설레면서 봤어요. 사실은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에필로그에서 두 사람의 인연에 기적 같은 부분이 있었다라는 걸 알고 나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죠. 관객들이 작품을 보시고 점점 잔잔하게 스미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산들산들한 설렘처럼요.

Q. 그간 대중의 뇌리에 박힐 강렬한 캐릭터를 자주 소화해왔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만족하나.

저는 무거운 역할에서의 제 모습을 만족했어요.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그런 거에 대한 만족감은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제 주변 지인분들이 '너의 모습 같은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제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를 많이 보여드리지 못해서 갈증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감정선이라던지 표현이라던지 소희에 저를 많이 꺼내 쓰긴 했어요.

Q. 미스터리 장르의 차기작에서는 천우희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금 '비와 당신의 이야기' 홍보하면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이데'라는 작품을 촬영하고 있어요. 아마 6월 말까지 계속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도전해보고 싶은 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해보지 않은 장르는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고, 해봤던 장르는 '이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잘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에 도전을 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액션을 자주 얘기했던 것 같고, 판타지도 좀 해보고 싶고, 정통 멜로도 하고 싶어요. 많은 걸 경험하고 싶거든요. 저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연기적으로 경험해보고 싶고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해보고 싶어요.

Q. 배우 일이라는 게 스스로를 소진하는 일이라, 채워 넣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다. 휴식기에는 어떤 일상을 보내나.

예전에는 휴식에 대한 개념이 달랐던 것 같아요.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집에서 쉬는 게 휴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온전히 나만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런 시간들이 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휴식도 아니고 채워지지도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를 더 해보려고 하고, 접해보려고 하고 취미생활을 조금 해나갈 수 있는 게 나름의 휴식이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고 6개월 정도 휴식이 있었어요. 얘기하면 좀 웃길 수도 있는데 그동안 손글씨도 하고 요리도 하고, 쿵푸랑 첼로도 배웠어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거에 로망이 좀 있었거든요. 제일 잘 맞는 건 의외로 첼로였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로망과 꿈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에서 첼로를 하게 된다면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어요.(웃음)

글 에디터 이우정 /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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