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청아 인터뷰 /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청순했던 이청아가 당당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12년 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늑대의 유속’ 속 어리바리하고 순진했던 ‘정한경’으로 이청아를 기억하는 이들도 아직 많다. 선한 인상과 캐릭터가 맞물리면서 이청아는 대중에게 착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연기 데뷔 10년 차에 접어들면서 만난 ‘꽃미남 라면가게’(2011)에서 이청아는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에 ‘욱’하기도 하고, 일을 망치기도 하며,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끄집어냈다.
2016년 이청아의 행보는 이보다 더 새롭다. 지난 6월 종영한 OCN 드라마 ‘뱀파이어 탐정’에서 이청아는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 여인 ‘요나’ 역을 맡아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이청아를 선보였다. 서늘한 눈빛, 오묘한 느낌은 “우리가 알던 이청아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랍고 또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변화했고,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감행 중인 배우 이청아를 만났다. ‘늑대의 유혹’의 이청아와 ‘뱀파이어 탐정’ 이청아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이청아 스스로도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MBC ‘운빨로맨스’에서 알파걸 한설희 역을 맡으면서 그는 세련되고 털털한 매력까지 추가했다. 이 드라마로 이청아는 메이크업과 패션도 주목 받는 ‘2030 워너비스타’로 우뚝 섰다.
“친구가 한 블로거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운빨로맨스’ 4~5회 캡처 사진을 올리면서 ‘나 이제야 에이미가 ‘늑대의 유혹’에 나온 이청아인 걸 알았어’라고 올린 걸 보여줬다. 감독님이 처음에 ‘이청아인지 모르게 해달라’면서 ‘매회 패션쇼 하는 것처럼 옷을 입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안 입던 화려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딱 붙는 옷을 입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설희를 연기하다 보니 제스쳐도 생기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졌다.”
이청아는 외국에서 살다 온 캐릭터 설정을 살리고자 영어 선생님에게 발음을 검사받았다. 영어 대사를 조금 더 과장되게 하는 게 ‘에이미(=한설희)’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수혁 씨 캐릭터인 ‘개리초이’도 저만 ‘개뤼’라고 해서 엄청 웃었어요. 발음을 너무 굴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죠”라며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로 활동했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개인적으로도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친 이청아에게 “배우로서 변화를 앞두고 고민과 설렘 중 어떤 마음이 더 컸는지” 물었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던 이청아가 “희열이 더 컸다”며 망설임 없이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나는 할 수 있지만 관객이 받아들여 줄지, 작품에 해가 되진 않을지 걱정한다. 대본을 보면 캐릭터가 나라고 생각하고 읽어야 하는데 연출을 해서 그런지 ‘이미지에 맞는 배우들을 생각’하면서 읽는다.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뱀탐’때도 ‘운빨’때도 감독님에게 ‘어떤 부분이 내게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을 캐치했는지’ 물었다. 이는 제작진이 나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 작품의 제작진 모두 ‘우리는 이청아의 이 이미지를 써보고 싶어’라고 얘기해줘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누가 믿어주면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
올해 선보인 두 작품에서 이청아는 각각 조연과 서브 여주를 연기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배우라면 분량과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데도 두 작품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청아는 많이 알려진 작품에서 주연해서 그렇지,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서는 주연이 아니어도 참여했다고 했다. 분량보다는 흥미가 있는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뱀탐’은 이청아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뱀탐’ 섭외를 받고 이청아는 “뱀파이어를 제가요?”라며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뱀탐’ 제작진은 이청아가 배우 하기 전, 학생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뱀탐’에는 드라마 이 전에 찍은 영화 ‘해빙’(올 하반기 개봉 예정)의 제작진이 일부 있었던 것. ‘해빙’에서 이청아는 마냥 선한 인물이 아닌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때 함께한 제작진이 이청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다음 작품에 그를 섭외했다.
과거에는 선한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절대 악의 축에 놓인 캐릭터를 이청아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뱀탐’ 제작진의 선견지명이 맞았고, 제작진의 확고한 방향에 자신감을 얻은 이청아가 일궈낸 값진 결과였다. ‘운빨 로맨스’에서도 이청아는 7화 이후부터 설희의 진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처음 해보는 톤의 연기를 펼칠 생각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의 이청아가 있기까지는 그에게 당근과 채찍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 매체 인터뷰에서 이청아는 “부모님께서 객관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새로운 무언가를 선보인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배우로서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는 것에 대해 지금의 부모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 물었다.
“독설가인 어머님이 지금은 곁에 안 계신다.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잘해보라고’ 혼내셨을 것 같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많은 걸 얘기하지 않으시고 ‘이 신이 좋았다’고 해주신다. 그때 제게 필요했던 것이 채찍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이 길을 믿고 나아갈 때라고 생각하셨는지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어머니가 지금도 계셨다면 혹평하셨을 것 같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라는 작품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2011년 12월, 더스타 인터뷰)는 이청아에게 그 마음은 그대로인지 물었다. 그는 “변함은 없다. 내 목표는 평생 즐겁게 연기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은 과정(최종 목표)을 위한 거다. 아주 작은 점을 많이 찍고 실수도 해보고 싶다. 실수가 아니면 좋겠지만, 실수여도 큰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장하고 싶다. 나에게 질책이 심한 편이라서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내가 잘한다고 느낄 것 같진 않다. 얼마 전 ‘닥터스’에서 나온 ‘원래 잘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되짚어봐요. 그래야 실수 안 하니까’라는 대사가 감명 깊었다. 나 역시도 연기를 10년 해도 언제쯤 내 연기가 마음에 들까 싶었다. 그런데 그 대사를 듣고 나니 ‘내 성에는 안 차겠지만 그게 잘하고 있는 거고 잘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고 나니 편해졌다.’”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청아는 아직도 도전을 꿈꾸고 있다. 요즘은 운동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레저를 찾고 있다고 했다. 취미를 늘리고 싶어서 최근에는 볼링과 실내 암벽등반을 배울까 고민했다고. 단순한 취미가 아닌, ‘준비된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내가 다이어트를 안 하고 옛날 모습 그대로 있었다면 ‘뱀탐’이나 ‘운빨’의 기회가 왔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어 공부도 하고 싶고 액션도 좋아해서 사격도 하고 있다. 장르는 판타지를 좋아해서 몸을 잘 쓸 수 있게 해놓고 있다. 예전에는 목소리가 약한 것 같아서 판소리도 배웠다. 언제 어떤 역할로 쓰일지 모르니 많이 준비해놔야 한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픽콘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제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