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뢰' 김상경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원래 잔인한 장면을 잘 못 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살인의뢰>를 보면서 눈을 찡그리고 온몸을 뒤로 젖혔었다. 잔인해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연쇄살인범' 박성웅을 대하는 형사 '태수' 김상경과 피해자의 남편 '승현' 김성균의 모습에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몰입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상경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살인의뢰>가 달랐다고 말했다. 그것에 서운함이나 아쉬움은 없다. 그는 "저는 편집실에 안 가기로 유명해요. 그냥 녹음할 때만 가고, 결과물의 편집권한은 감독님에게 있다고 믿고 있어요"라며 지금의 결과물인 <살인의뢰>가 맞다고 말했다.
"승현(김성균)의 부분도 그렇고, 시나리오와 영화의 흐름이 좀 달라졌어요. 저도 <살인의뢰>에서 사실 결혼도 했었어요. 그런데 마누라랑 아이가 통째로 없어졌죠. 제가 여동생을 잃은 후, 3년 사이에 망가지고 피폐해진 건 충분히 보여졌다고 생각돼서 그 부분이 없어진 것 같아요."
아내와 아이가 있는 부분도 모두 촬영을 했었다. 아쉽다면 아쉬울 부분이었다. 김상경은 사실 캐릭터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배우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신의 입으로 "약간 '완벽주의자' 성향"이라고 말하면서 "예전에 '개그콘서트'의 코너 '생활의 발견'에 출연했을 때, 김기리씨랑 송중근씨가 게스트로 나와서 이렇게 연습 많이 하자는 사람 처음이라고 했어요. 저는 막 준비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영화 '살인의뢰' 스틸컷
<살인의뢰>의 형사 '태수'를 맡아서도 그랬다. <살인의뢰>가 김상경의 전작 <살인의 추억>, <몽타주>에 이은 형사 3부작이라고 불리지만, 그에게 '태수'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그래서 김상경은 '태수'를 준비하는데도 게으름이 없었다. 일단 자서전을 썼다. 죽임을 당한 여동생 '수경'(윤승아)와의 추억도 디테일하게 담았다. 가령 몇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자라왔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김상경은 그런 디테일이 많이 쌓일수록 캐릭터가 탄탄해진다고 믿는다.
그런 감정들이 쌓여서 김상경은 <살인의뢰>에서 강천(박성웅)과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강천이가 대사를 하잖아요. '걔 오빠가 형사라고 그랬지' 이 말을 듣는 데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분노와 슬픔을 느낀 것 같았어요. '컷' 하고, 다른 장면을 찍어야 해서 시간이 별로 없는데도 눈물이 안 멈추더라고요. 머리는 다음 장면을 찍어야 한다고 하는데 안 멈추는 거야. '화려한 휴가'에서 동생 죽었을 때 이후로 이렇게 극한의 감정은 오랜만인 것 같아요. 내가 내 감정조절이 안돼. 돌을 들고 있을 때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줄을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흔들렸는지 저도 몰랐어요."
태수의 '감정'이 전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었다. <살인의뢰>에서 김상경은 매장면 감정을 표출해야 했다. 살인범에게 여동생을 잃고, 시신도 찾지 못한 오빠의 마음을 살인범에게 초콜릿을 건네면서까지 표현해야 했다. "<살인의 추억> 때는 감정적인 (송)강호 형을 오히려 말리는 반대편이었다가 저 역시 점점 감정적으로 되어갔고, <몽타주> 때도 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살인의뢰>는 동생의 죽은 후 극단적 호흡으로 가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감정적으로 표현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무리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한 김상경이지만 <살인의뢰> 현장에서만큼은 박성웅과는 잘 지내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제가 현장에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배우인데, 보통 스태프들과 얘기를 많이 해요. 상대 배역과는 말을 잘 안 해요. 배우들과 친해지면 역할에 방해될 수 있어요. 그건 어떤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동물적으로 안 친해져요. <살인의뢰>에서 조재윤 같은 경우는 친한 선후배 사이니까, 정말 너무 편하게 지냈죠"라고 답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살인의뢰>의 김상경, 박성웅, 김성균은 각각의 위치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에 김상경은 "배우가 여러 유형이 있어요. 어떤 유형은 (김)성균이처럼 평상시에는 안 그러는데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잘하는 유형, (박)성웅이처럼 베이스를 극대화 시켜서 잘하는 사람"이라고 함께한 김성균과 박성웅에 애정을 표했다.
KBS2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로 시청률 43%를 돌파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영화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도 밟았다. 어찌 보면 배우로서 흥행과 명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쥐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은 항상 미래를 걱정하게 되어있어요"라며 자신의 목표에 무게를 더한다.
"지금 하고 싶은 거요? 없어요. 남은 내 인생의 모든 기준은 오늘 이 시간을 잘사는 거예요. 그럼 분명히 다가오는 시간도 행복하게 되어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을 가장 재미있게 보내면 반드시, 또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재밌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이 저에게 올 거라 믿고 있어요. 가족들과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면, 그게 내 얼굴에 묻을 것이고, 그러면 내 얼굴은 좋게 늙어가고 있을 거예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면, 보기만 해도 그냥 좋은 사람도 있잖아요. 제 목표는 그거예요. 저 사람이 나오면 그냥 기분 좋아지는 사람."
▶ [인터뷰②] 김상경 "라이벌은 브래드피트 형" 으로 이어집니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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