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1970 이민호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예전보다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살 빠졌어요, 인터뷰하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이러니까 잠을 잘 못 잤어요.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할 순 없으니까"라는 말이 이민호와의 첫 대화였다. 애교 섞인 넋두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서 더는 '꽃보다 이민호'가 아닌 '배우 이민호'가 느껴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강남 1970>에서 이민호는 넝마주이 생활을 하다 강남 개발의 이권 다툼에 휘말리게 된 '종대' 역할을 맡았다. 지난 2008년 <울학교 이티> 이후 스크린에는 약 9년 만이다. 그동안 영화 시나리오 제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민호는 좀 더 때를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20대 후반쯤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잘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캐릭터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지거나 저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은 안 받은 것 같아요. 처음 <강남 1970> 완성본을 봤을 때, 개인적인 만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25살, 26살에 했다면 감정적으로 이런 느낌이 날 수 있었을까 싶어요. 특히 장례식장에서 뒤돌아보는 장면은 제가 봐도 감정이 깊게 섞인 장면이기 때문에 되게 남자답다, 멋있지 않나 싶어요."
이민호는 고등학교 때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며 통쾌함을 느꼈고 20대 때는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비열한 거리'를 재미있게 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기다려온 충무로의 한 걸음을 <강남 1970>으로 뗀 것은 '유하 감독'이라는 타이틀보다 시나리오였다. 무엇보다 큰 틀에 담겨있는 묵직한 메시지가 끌렸다.
"단순히 이 영화를 멋있게 볼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시대의 메세지가 담겨 있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는 말도 많이 했거든요. 어쨌든 지금의 20대들은 여러 가지 출구 없는 인생에서도 방향을 많이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아요, 어쨌든 그 시대보다는요. 그래서 <강남 1970>을 보고 관객들이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그리고 조금 더 진정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강남 1970 이민호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제공
묵직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민호는 <강남 1970>에서 넝마주이의 밑바닥 생활부터 보여준다. "저도 어색했습니다"라며 그는 "분장이나 옷 같은 경우에는 엄격한 심사와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스테프들도 입어보고 가장 거지같은 옷으로 골랐는데"라며 웃음 지었다. 넝마주이 생활은 그와 용기(김래원)의 시작을 보여줬다. 이후 강남 이권개발에 뛰어들며 이민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땅'을 보고 김래원은 '돈'을 본다. 액션도 그랬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진한 감성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좀 억울했어요. 내 꿈은 정말 소박하게 따뜻한 밥 한 끼, 우리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집을 원했을 뿐인데, 그것도 못 이루고 간다는 것의 억울함이 있었죠. 저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사실 시대가 변했지만, 누구나 잘살고자 하는 마음,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들은 조금 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좋은 옷 입히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감정을 더 신경썼던 것 같아요."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확 각인시킨, 스타로서의 이민호가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는 "많은 대중이 '꽃보다 남자'를 통해서 저를 처음 알아서 저에 대해 잘 모르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출구 없이 답답한 시간, 정말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가 분명히 있었어요. '꽃보다 남자'때가 24살 때였는데 20살부터 그 전까지 시간들이 저한테는 정말 암흑기였거든요. 그때를 생각하면 공감하기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24살로 대중들에게 '꽃보다 이민호'로 각인된 그는 29살의 청년이 됐다. 지나가는 20대를 쿨하게만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숨이 나옵니다. 20대가 가는 게 너무 싫거든요. 소년성을 잃는 게 싫어요. 20대 후반까진 내가 소년처럼 보이고 싶으면 때로는 소년처럼, 남자답게 보이고 싶으면 때로는 남자답게 보일 수 있는데, 30살이 넘고 남자로서 나이를 먹어가면 내가 하는 말들에 무조건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 그런 게 싫어요. 지금은 장난치고 헛소리해도 그럴 수 있으려니 해주시는 것 같은데 그때 돼서도 똑같이 하면 '나이먹고 왜 저래' 그럴까 봐요. 주변의 시선이나 의식, 나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제 모습을 표현하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 나이 먹는게 쉽지 않아요."
이민호가 말하는 멋진 사람은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비록 상황적인 것 때문에 100퍼센트 진실성을 못 띌 때도 있지만,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순수하고 꾸밈없이 내비칠 수 있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그리고 그는 '남자'로서 지켜야 할 것을 묻자 "남자는 항상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빠로서, 여자에 대한 책임감,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킬 수 있는 책임감, 그런 것들이 남자다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실제 만난 이민호는 '꽃보다 이민호'와는 달랐다. 괴리감이 있다는 말에 "안하무인 구준표 같을 줄 알았어요?"라고 되받아치며 웃는 그는 스타보다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면 '너 이렇게 웃긴 애였어?', '너 원래 이런 애였어?'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의 말처럼 그는 작품 외에 다른 노출이 많이 없는 배우였다. 작품을 통해서 만나기 때문에 캐릭터로 생각하게 된다고. 그래서 그는 20대를 보내며 풀어진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보였다.
"저의 20대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완전히 풀어진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역할은 30대보다 20대에 더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 좋은 역을 하게 된다면 저에 가까운 모습을 내비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많이 투영할 수 있는." 20대를 보내는, 그리고 직접 만난 그의 서글서글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민호를 작품에서 만나길 기대해본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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