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서 경구 역할을 맡은 유승목 / 사진 : 심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직 대중들에게 '유승목'이라는 세 글자는 낯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아! 이 배우'라는 생각이 들거다. 영화 '해무' 속에서 유승목은 극한의 상황에서 돈부터 챙기려 드는 세속적인 뱃사람 경구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가 그냥 경구 같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이 그렇다. '살인의 추억'의 기자, '늑대소년' 강박사, '한공주' 속 공주의 아빠, '해무' 경구. 분명히 영화 속 캐릭터로는 떠오른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그는 낯설었다.
영화 '해무'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하고 싶었어요, 무조건"이라는 한 마디로 대답을 마쳤다. 그때는 '해무'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이었다. 지인들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하고 작품이 좋다, 그리고 배우 김윤석이 출연한다는 정보뿐인 상태였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본 뒤 그는 '경구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왔다.
"'해무' 시나리오를 보고 경구를 물고기에 비유했었어요. 물고기 잡은 걸 뭍에다 놓으면 대어들은 '철퍼덕'하고 한참 가만있다 '철퍼덕'거리거든요. 그 느낌이 선장이고, 경구는 '파닥파닥' 거리는 잔챙이죠. 경구는 가장 얍삽하고 똑똑한 것 같지만 한 치 앞 밖에 못 보는 그런 캐릭터죠."
경구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배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부터 모습 속에 많은 성격을 담아야 했다. '그래 봤자 다들 뱃사람들이지' 하겠지만, 경구는 그가 마지막까지 챙기려 했던 세속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기재로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신경을 기울였다. 유승목은 '해무'의 배경이 되는 IMF 시절의 유행하는 스타일을 찾았고 직접 꼬불꼬불 거리는 파마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것은 경구의 스타일이 되었다.
유승목은 파마머리에 레깅스, 일명 몸빼바지, 청잠바, 사각팬티까지 화려한 패션을 소화했다. 이는 실제 선원들의 생활에서 가져온 스타일이었다. 배 위에서 실제 선원들이 물에 젖으면 몸에 딱 달라붙어 활동하기가 어려워 레깅스를 입는다고. 그는 "재밌는 게 '해무'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니까 사람들이 냉장고 바지(몸빼바지 스타일의 시원한 소재의 옷)라고 부르며 경구 옷 스타일로 입고 다니더라고요. '해무' 개봉 후였으면 영화 때문에 유행한 거라고 할 텐데"라며 웃음 지었다.
영화 '해무' 경구 역을 맡은 유승목 / 사진 : NEW
'해무' 현장에서 그는 뱃사람이었다. 그리고 김윤석, 문성근, 김상호, 이희준, 박유천 역시 그랬다. 서열이 확실한 뱃사람 구조가 '진짜 사나이'같은 군대식 삶이었겠다 추측하자 그는 "식구 같았어요"라며 현장을 회상했다. "(김)윤석이 형님이 배우들끼리 저절로 서열 정리가 됐다고 하시는데 그보다도 가족이었어요. 배우들은 '해무'의 내용을 다 알고 현장에 임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서로 너무 가족 같아서 촬영하면서 점점 가슴이 찡하고, 먹먹해지고 그랬어요."
유승목은 김윤석은 정말 선장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윤석은 촬영이 끝나면 선원들에게 항상 "뭐 먹을래?, 뭐 먹을까?"라고 물으며 맛있는 음식을 베풀었다. 식사가 끝나면 간단한 음식이랑 술이랑 해서 김윤석의 숙소에 모여 작품 얘기도 많이 나눴다. '해무'에서 등장하는 김윤석의 "식구들은 먹여야 되잖아"라는 대사와 똑 닮아있는 선장이었다.
반면 박유천은 동식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유승목은 "서울에서 막내하면 뭔가 이기적이고 뺀질뺀질 할 것 같은데 (박)유천이는 정말 동식이 같은 막내였어요. 묵묵하고, 자기 힘들다는 얘기 잘 안 하고.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아서 다들 놀랐어요. (김)윤석이 형님이 '쟤는 정말 남자다'하셨잖아요, 정말 그래요. 저희보다 낫더라고요"라고 그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앞서 김윤석은 '해무'의 공약으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 영화 속 의상을 입고 무대 인사를 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이에 유승목은 "현장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아마 (박)유천이가 한 말 같은데 '형님들 우리 이렇게 입고 가로수길 걷자'라고요. 다시 말하니 꼭 입고 싶네요"라며 500만 관객 공약을 지키고픈 욕심을 보였다.
김윤석-문성근-김상호-유승목-이희준-박유천 영화 '해무' 포스터 / 사진 : NEW
유승목은 '해무'가 자신에게 감사함이라고 표했었다. 감사함에는 좋은 사람들과 나눈 현장 공기가 담겨있고 배우로서의 유승목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서도 그랬다. 그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선택이었다. 학교에서 학예회나 공연을 할 때 주연을 도맡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같은 반 친구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다는 말에 '그런 곳도 있었어?'라며 지원을 목표로 한 이후로 약 25년이 넘는 시간을 '연기'를 생각하며 보냈다.
"마지막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거라...연기? 그리고 가족이죠. 돈에 대한 건 없어요. 그동안 많이 벌어본 적도 없고 하니까. 결국은 연기죠,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가 될까. 좋은 배우가 될까."
'해무' 속 경구가 마지막까지 돈을 지키려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다. 유승목은 배우로서의 자신을 지키고 싶다. 유승목은 현장에서 함께한 배우들과 맛있는(?) 음식들을 떠올리며 '해무'를 회상했다. 하지만 "길이가 몇 미터나 될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가로수길을 왔다 갔다 하고 싶어요"라고 덧붙이는 그의 말에 다른 말보다 진하게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배우 유승목을 영화 속 캐릭터들로 기억하는 게 납득이 간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연기'를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는 행복을 얻게 될 것 같다.
유승목 / 사진 : 심엔터테인먼트 제공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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