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김유정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김유정을 생각하면 여전히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필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김유정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어르신도 '해를 품은 달'에 그 아역, '메이퀸'에서 씩씩한 애, '황금무지개'에서 착한 애 이런 설명이면 "아 걔 예쁘지"하신다. 하지만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김유정의 모습은 실제로는 좀 달랐다.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은 말없이 먼저 세상을 떠난 막내 천지(김향기 분)가 남겨놓은 메세지를 엄마 현숙(김희애 분)과 언니 만지(고아성 분)와 그의 친구였던 화연(김유정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김희애,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의 쟁쟁한 네 여배우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김유정은 이 작품에서 친구 천지(김향기 분) 죽음의 가해자인 듯 비치는 인물 화연으로 첫 악역도전에 나섰다. 극 중 화연과 같은 또래인 학창 생활을 지나가고 있는 김유정에겐 더욱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화연이 정말 하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미지를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그런 것보다 내가 화연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중점을 뒀지 다른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라고 덧붙였다.
김유정이 맡은 화연은 죽은 천지(김향기 분)의 절친한 친구로 늘 상냥한 말투와 밝은 표정으로 모두의 주목을 받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과 속내를 안고 있다. 김유정과 인터뷰에서 꽤 긴 시간 필자는 화연이 나쁜 애인가 아닌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유정은 '화연은 나쁜 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땐 좀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화연의 감정이 다 거짓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화연이는 진심이다. 추상박(유아인 분)과 얘기한 후 만지(고아성 분)에게 전화하는 것도 진심으로 걱정되어 전화한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화연이가 나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듣고 너무 고민되고 어려운 거예요. 어떻게 나쁘게 안 보일 수 있겠어요?"
차라리 화연이 나쁜 애라 시원하게 욕을 했으면 좋겠는 데라고 했더니 김유정은 "사람들이 화연이를 나쁘게만 보지 않고 어렵지만 '화연이도 사연이 있었구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화연이가 꾸며낸 게 아니라 진실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진심으로 하려고 노력했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영화를 보시고 화연이를 오해한 게 되게 미안했다고 하셔서 '아 성공했구나!' 생각했어요. 화연이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우아한 거짓말'에서 천지의 죽음 이후 화연은 늘 쫓겼다. 김유정은 어떻게 보면 천지보다 더 불쌍한 게 화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정점은 그릇을 버리던 화연과 만지(고아성 분)가 만나던 부분이었다.
"그때 만지 언니의 말이 너무 좋아요. '네가 아무리 근사한 떡을 갖고 있어도 그거에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데 순간 감정이...너무 좀 묘했어요. 정말 맞는 말 아니에요?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그게 김유정으로도 공감 되고 화연으로도 공감이 되니까."
'우아한 거짓말'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김유정은 영화나 드라마 속 슬픈 장면을 봐도 울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정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숨기는 게 더 큰 거짓말인 것 같다고. 앞서 만난 고아성은 김유정과 김향기가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더 선배님 일 수도 있다며 말을 놓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유정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평소에 감정표현을 묻는 말에 덤덤하게 김유정은 답했다.
"슬픈 감정은 많이 숨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안 좋은 것도 있죠. 응어리가 남으니까. 그런데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려서 괜찮아요."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거 아니냐는 묻자 "촬영할 때 빼고는 어른답고 그러지 않아요"라며 "친구들이랑 만나서 여기저기를 움직이는 편은 아니지만 한 군데 앉아서 그냥 얘기하고 놀아요"라고 평소 생활을 말했다. 연예계에서 94라인 같이 아역배우들 그룹이 있느냐고 묻자 "아역배우들끼리 연락해서 만나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없을 수가 없죠"라며 "(이)영유 언니랑 (서)신애 언니랑 저랑 셋이서 어려서부터 되게 친했어요"라고 익숙한 스타들의 이름을 꺼냈다.
그는 '우아한 거짓말' 촬영 전 3개월간 외국에 혼자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는 '수상한 그녀'로 인기몰이 중인 심은경의 3년간 혼자 유학생활을 떠오르게 했다. 그건 비슷한 나이 또래를 관통하는 아역배우들의 성장통일 수도 있겠다라고 하자 김유정은 "그런 것도 없잖아 있죠, 조금"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LA근처 사막 쪽에 있었던 김유정은 유명한 무언가를 본 것도 특별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 지내다가 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니까 너무 편한 거예요. 있던 곳도 사람도 별로 없고 되게 여유롭고요."
훌쩍 커버린 듯한 김유정은 '해를 품은 달', '메이퀸', '황금무지개'등의 작품으로 안방극장에 얼굴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알던 김유정과는 전혀 다르게 그는 '우아한 거짓말'에서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 도전에 나섰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생체실험을 다룬 단편 헐리웃 영화 'ROOM 731'에 출연했다. 아역이라는 타이틀보다도 배우로서의 폭을 넓히는 행보다.
"(작품선택은) 제가 거의 다 하는 편이고, 좋은 거면 다 하고 싶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저를 (대중들이)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하는 게 좋아요. 많이 알리고 싶은 이야기나 아니면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들도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 김유정에게 '우아한 거짓말'속 화연은 진한 색깔의 옷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아한 거짓말'에서 관객으로서도 느낄 수 있는 게 많고 배우로서도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그래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많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로 그는 많은 사람이 접할 '우아한 거짓말'에서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화연으로서나 훌쩍 커버린 16세 소녀 김유정으로 혹은 근사한 떡을 쥔 배우 김유정으로서.
"화연은 나쁜 애가 아니다? 마냥 나쁘게 만은 안 보셨으면 그게 제 목표예요. 화연이도 어느 정도 사연이 있고 어떻게 보면 불쌍한 얘구나 정말 외로웠구나 이런 걸요."
한편, 김유정이 그려낸 화연의 모습과 함께 김희애, 고아성, 김향기의 케미와 웃음담당 유아인까지 확인할 수 있는 웃픈(웃기고+슬픈)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오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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