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여배우, 예쁨 대신 파격으로 "브라보" 극찬을 받다 [PICK★]

여배우에게 아름다움이란, 항상 요구되던 것이었다. 그런데 캐릭터를 앞에 두기 위해 아름다움을 뒤로하자, 배우가 가진 본연의 연기력이 도드라지며 대중의 극찬이 이어졌다. 과연 "브라보! 멋지다"를 외치게 한 다섯 명의 여배우는 누굴까.

◆ SBS 드라마 '봄날'(2005), 정은 役 고현정

고현정은 지난 2005년 방송된 SBS 드라마 '봄날'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서 섰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로 배우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있을 때 신세계 그룹 부회장 정용진과 결혼하고, 2003년 그와 이혼한 이후 10년 만에 복귀작이었다. 대중의 궁금증이 쏠렸다. 그때 고현정이 선택한 것은 '화려함' 대신 '민낯'이었다.

'봄날' 속 고현정이 맡은 서정은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채 섬의 보건소장의 양딸로 자라나 불의의 사고로 실어증에 걸리게 된 인물이자, 고은호(지진희)와 고은섭(조인성) 사이에서 사랑과 갈등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고현정은 이후 진행된 패션매거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공백과 수많은 소문 끝에 결정한 컴백작에서 화장을 안 하는 건 내 손해다. 하지만 그걸 선택했을 때는 이유가 있었다"라며 "실어증에 걸린 섬 처녀가 과연 화장을 할까? 역할을 생각하면 답은 나와있었다. 그리고 내가 메이크업을 포기하면 우리 스태프들이 2시간은 더 잘 수 있다. 여배우로서 메이크업을 해야할 이유보다 안 할 이유가 더 많았던 셈"이라고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고현정은 10년 만의 복귀작에서 '연예인'이라는 화려함보다, '배우'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이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드라마 '선덕여왕' 등을 통해 '배우 고현정'의 각인 시켰다.

◆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이지안 役 이지은(아이유)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아온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처음 한국 스태프와 배우들과 함께한 영화 '브로커'에서 아이유를 캐스팅했다. 그는 캐스팅 이유로 "나의 아저씨"를 언급했다. "후반 부에는 이지은의 모습만 봐도 눈물이 흘렀다"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비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만일까. '나의 아저씨' 속 이지안은 부모가 물려준 빚,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날에서 박동훈(이선균)을 만나며 변화하는 인물이다. 당시 아이유는 "따뜻해져 본 경험이 없는 지안이를 연기하기 위해 조용히 치열한 사람이 돼보려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아이유는 이지은을 담아내기 위해 화려한 화장을 지웠다. 어둡고 무채색의 옷은 단벌처럼 느껴지게 했다. 가방도 하나 뿐. 한 겨울에도 양말은 발목 양말을 신고, 얇은 운동화로 발목을 드러냈다. 방안 구석에 웅크린 몸은 이지안의 이름과 달리 어느 것 하나도 편안해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유의 선택은 이지은의 변화를 가장 풍부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사람의 온기로 따뜻해지는 그 미묘한 온도를 전달했다.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 작가 역시 '나의 아저씨'를 보고 자신의 SNS에 "'나의 아저씨'는 인간의 상태를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그리고 최고의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라고 극찬했다.

◆ 영화 '미쓰백'(2018) 백상아 役 한지민

백상아는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어린시절에 제대로 된 보호 한 번 받지 못하고, 엄마는 술에 취하면 그를 학대하곤 했다. 그런 그가 동네에서 아동 학대로 의심되는 소녀 지은을 보게 되고 그 손을 잡는다. 한지민이 그런 백상아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예쁘기만 한 그가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백상아를 연기하는 것에 '파격'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한지민은 '백상아'를 꾸미지 않고 그대로 임했다. 작품 속 백상아가 술을 마시면, 음주연기 대신 한지민도 술을 마셨다. 종류 별로 담배를 펴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또한 한지민은 "피부가 얇아서 주름이 잘 생기는데, 이번에는 크림도 안 바르고 했다"라며 백상아가 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저하기도 했다. 그의 각별한 노력은 수상으로 이어졌다. 영평상, 청룡영화상에서 뿐만 아니라 런던동아시아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은 한지민은 "배우에게는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시간과 어려움, 고충이 정말 감사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다"라며 "오늘 이 상의 무게를 무겁게 견디려하지 않고 연기하면서 무서울 때 이 상을 생각하며 도전하는 배우되겠다"라고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했다.

◆ 영화 '카시오페아'(2022) 수진 役 서현진

영화 '카시오페아'는 듣기만 해도 먹먹한 설정의 영화다. 이혼 후 아빠 인우(안성기)의 도움을 받아 홀로 딸 지나를 키우는 변호사 수진은 어느 날,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노인성 치매보다 빨리 강하게 일어나는 질환으로 초로기 치매의 민낯을 보여준 작품이다. 서현진은 초로기치매에 걸린 수진 역을 맡아 아빠 인우와 살아가기 위해 습관을 몸에 익혀가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실제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를 겪은 외할머니가 계셨던 서현진은 수진 역을 맡아 "가짜처럼 보일 까봐" 고민이 많았다. 서현진은 "병세를 나타내야하는데 하나라도 '어?'하는 부분이 있으면 영화 흐름이 깨질 것 같았거든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화장을 모두 지우고, 마지막에는 얼굴에 '서현진'까지 지웠다. 서현진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까지 몰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있구나'였다"라며 "'카시오페아' 촬영 중에 만난 부모님이 "내 딸 얼굴이 없네"라고 말씀 하실 정도 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서현진의 열연 덕분일까. '카시오페아'의 관객들에게 서현진은  "인생 연기"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2~3) 문동은 役 송혜교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누가 송혜교가 맨날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고 했던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에서 송혜교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사랑스럽고, 지적이고, 어딘가 상처있지만, 모두가 사랑하게 되는 얼굴을 내려놨다. 학창시절 학교폭력으로 온 몸에 흉터뿐인, 마음 한 점 멀쩡하게 남아있지 않은 문동은 역을 맡아 그는 온 생을 걸고 복수만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단단하게 그려낸다. 송혜교였기에 그 모습이 아찔했고, 뒷모습까지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는 '더 글로리'를 보지 않을 때에도 귓가에 맴돌았으며, 웃는 모습에서도 슬픔이 느껴졌다.

송혜교는 엘르코리아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거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조명도 그런 모습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갔다"며 "동은이는 사는 내내 고생만 했는데 완벽하게 관리받은 모습으로 나온다면 그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송혜교가 갑자기 늙었다는 말도 있는데, 당연히 저도 나이가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선택은 '복수를 위해 나아가는 단단한' 문동은을 완성했다. '태양의 후예'에 이어 송혜교와 두 번째 호흡을 맞춘 김은숙 작가 역시 "문동은과 송혜교의 싱크로율은 121%"라고 극찬하며 "처음 가편집본을 받고 정말 소름이 끼쳐서 입이 딱 벌어져서 아무것도 못했다. '송혜교에게 이런 표정이 있구나,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구나, 이런 걸음걸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석에서 본 송혜교는 없고 온통 '문동은'이라서 너무 기뻤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배우들은 항상 '갈증'에 시달린다.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고, 자신의 틀을 깨고 싶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섯 여배우를 보면 그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의 희열이 느껴지지 않나. 앞으로 이어질 이들의 연기에 기대와 관심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