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출연 배우들 /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담담히 우리네 인생을 위로하고 응원한다. 허투루 만든 캐릭터가 없고, 흘려 버릴 대사가 없다. 마음을 움직이는 노희경의 필력은 그의 신작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계속 될까.

tvN 새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노인’의 이야기가 아닌 ‘어른’의 이야기를 한다. 젊은이들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의 “살아있다”는 외침과 ‘꼰대’라면 질색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청춘의 유쾌한 인생 찬가를 다룬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는 한류스타도 연기돌도 출연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의 엄마’로 출연했던 연기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기서 물음표가 생긴다. 도대체 주인공은 누구지? 왜 어른들만 나오는 거지? 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까지. 알면 알수록 제작진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이 많아지는 드라마가 ‘디어 마이 프렌즈’다.

한류스타, 연기돌 아닌 ‘시니어 드라마’를 만든 이유
작가 의도 전달되면 시청자도 캐릭터를 예뻐하고 애틋해 할 것

한동안 드라마 판은 ‘기승전 사랑’이라고 치부할 만큼 젊은 배우들의 멜로물로 가득했다. 그리고해외 판권을 위해 연기돌이나 한류스타가 꼭 한 명씩 등장했다. 작품의 가치보단 시장성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많았다. “돈이 안 되니까”라는 굉장히 중요한(?) 이유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작되지 않았던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나타났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어른’과 ‘노인’의 차이는 대체 뭘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급변하는 시대에 30대인 필자도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 도래했다. 열심히 살고 있긴 한데 늘 뒤쳐지는 것만 같고, 나는 그대로 인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달라져있었다.

요즘은 취업도 결혼도 인간관계도 뭣하나 쉬운 게 없다 보니 나에 대한 원망을 넘어서 이러한 환경을 조성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깊어지고 있다.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청춘들은 그런 기성세대를 ‘꼰대’로 치부하며 그들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있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요즘 애들은’이라는 편견 속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없는 청춘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그렇다 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두 세대는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는 걸까.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신구, 김영옥, 김혜자, 나문희, 주현, 윤여정, 박원숙, 고두심, 고현정이 출연한다. 고현정을 제외하면, 막내는 고두심(66)이다. 당연히 스토리는 어른의 이야기로 그려질텐데 1020 젊은 세대에 대한 관찰은 둘째치고 이들 시청층은 어떻게 유입하려는 걸까. 의문이 든다.

이에 노희경 작가는 “그 고민을 안 한 건 아니다. 저는 관찰의 부재가 불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어른을 관찰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분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게 내 목적이고, 그게 전달 된다면 (시청자가 이들을) 귀여워하고 예뻐할 거고 애틋해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청춘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늘구멍 만한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른들보다 더 많은 스펙을 갖춰야 하고, 그 스펙을 갖췄다 해도 내 자리가 없어 슬프고 원통하다. 겨우 취업에 성공하면 인턴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정규직이 돼야 하고, 정규직이 돼도 갓 입사한 신입도 희망퇴직을 받는 이 전쟁터에서 이기고자 시간을 바친다. 삶이 녹록지 않으니 집도 있고, 번듯한 직장도 있고, 먹고 살만한(?) 삶을 살았고 그 자리를 청춘에게 내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청춘의 시선에선 청춘의 삶이 가장 치열하다. 그래서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어른들의 삶이 치열하다고 선뜻 생각하지 못한다.

노희경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이들이 처한 처지에 비하면 우리는 치열한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에게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다가올 생로병사의 병사가 남아있다. 인생으로 보면 가장 치열한 시기다. 죽거나 아프거나 내 의지가 꺾이거나. 그 치열함은 충분히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굴 사랑해서 치열한 건 치열한 정도가 아니다.” 한 순간 제작발표회장이 숙연해졌고,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머나먼 얘기라고 생각해서 미뤄뒀던 생각을 끄집어내준 노희경 작가의 추진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특히 노희경 작가는 “이 작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건 선생님들의 나이 때문도 있었다. 이 작품을 더 미루다간 후회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우상들과 일하고 싶었고, 이 순간은 내가 제일 행복하다”며 이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제작사와 방송사에 감사를 표했다.

‘순수꼰대처녀’ 오충남으로 분하는 윤여정은 다소 감정적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포스터 찍는 날 김혜자가 제 손을 꼭 잡고 ‘이 작가가 죽기 전에 우리를 만나게 해주려고 이 작품을 썼나봐’라고 얘기해서 울컥했다. 노희경 작가 아니면 이런 작품을 우리한테 선물할 것 같지 않아서 열심히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라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 한번쯤은 출연하고 싶어한다. 단순히 스타작가여서가 아니다. 삶에 대한 통찰력, 사람에 대한 고찰에서 오는 깊은 가르침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극중 문정아 역을 맡은 나문희는 “노희경 작가 작품을 여러 번 했는데 내 속에 있는 것을 많이 끄집어내서 이번에도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노희경 작가가) 좋은 물을 담아줘서 물고기가 잘 놀겠다”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조희자 역의 김혜자는 “노희경 작가 작품은 처음 하는 거라서 약간 낯설다. 제가 맡은 역할을 위해 대본을 오래 봤는데 볼수록 특이하고 좋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두 배우의 소감만으로도 노희경 표 휴먼드라마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작품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른들이 볼만한 드라마, 나아가 어른들을 이해할 만한 드라마를 집필한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가 그러하다. 이 작품만은 시청률을 떠나 평가 받기를 바란다. 5월 13일(금) 오후 8시 30분에 첫 회가 방송된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