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 사진 :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당신에게 오면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을 거라고 말했어요"라고 캐나다의 한 소설가(라프 스팰 분)는 파이 파텔(이르판 칸, 성인역)을 찾아온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 망설이던 파이 파텔이 입을 열며 '라이프 오브 파이'(이안 감독)는 시작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수라즈 샤르마, 소년역)의 가족은 이를 정리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콜럼버스와 반대되는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선박은 파손돼 가라앉고 파이는 가족을 잃고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와 한 구명선에 오른다.

파이의 여정은 이중성으로 가득차있다. 인도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끝없이 펼처지는 바다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파란색으로 가득찬 바다가 아니다. 바다는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듯 노을이 질 때면 온통 빨간색 노을 빛으로 가득찬 하늘을 보여주고, 어둠 밖에 없는 밤에는 형광빛의 말미잘과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의 별로 가득 차있다. 폭풍우로 가족을 앗아간 바다는 파이도 모르는 사이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다에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생물들은 실상 독을 품고 있다. 파이가 잠깐 머문 식인섬에서 낮에 그가 마신 물은 저녁에는 강한 산성의 독이 되어 그 안에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파이가 홀린 듯 딴 꽃은 인간의 이빨을 머금고 있다. 또 아름다운 바다를 구성하는 큰 이미지 중 하나인 해파리는 실상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한 독을 품고 있고, 밤 바다에서 더욱 빛나는 범고래는 파이를 단숨에 삼켜버릴 수 있는 짐승이다.


영화 속에서 나이를 먹은 파이는 바다를 건너온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캐나다 작가에게 "돌아보면 휴식이 필요할 때, 머물 수 있는 섬을 주셨고…"라며 그의 종교적 관점을 보였다. 이는 관객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며 훈훈함을 전달하는 대목 중 하나.

허나, 파이의 어린시절 카톨릭교와 힌두교를 모두 섬기는 그에게 아버지는 "여러가지를 믿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카톨릭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는 유일신의 종교고, 힌두교는 본래 다신교 이며 강대한 세력을 가진 신부터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충적인 교리를 가진 두 종교를 함께 믿는 것은 사실 각각의 교리에 어긋난다.

멕시코 해안에 도착해 구조된 파이는 깨어나 폭풍우에 파손된 선박회사 직원들의 보고서 작성을 위해 그 동안의 경험을 이야기 할 것을 종용 받는다. 인도에서부터 호랑이와 한 배에 타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소년의 모험담은 그들에게 '믿을 수 없는' 동화였다.

'믿을 수 있는 얘기'를 해달라는 선박회사 직원들에게 파이는 함께 구명선에 승선한 4명의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음을 당해 결국 자신만 홀로 살아나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소년의 이야기 속에서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호랑이는 각각 배역에 맞게 사람으로 치환됐다. 이 모든 과정을 들은 소설가는 성인이 된 파이에게 "진실은 뭐냐"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파이는 답한다. "당신은 어느 쪽 이야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파이는 3.141592..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원주율의 숫자다.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끝없는 바다와도 같은 숫자다. 하지만 그 행로는 자신으로부터 결정된다. '돌아보면 그때가 없었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예요'라는 기적을 경험한 성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할지, 치환되어야 할 공포의 순간으로 남길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당신에게도 그 끝을 묻는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지 말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문의 : 더스타 thestar@chosun.com)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