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그런 때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새벽이 되고, 군대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 이제 슬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똑같이 흘러가는 2년이라는 시간인데, 뭐가 그리 일도 많고, 인간 군상도 많고, 귀신도 많고, 그런 시간이었을까. 겪어보지 않은 이야기는 손에 닿지 않는 그 어떤 별에서 일어난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D.P.'는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의 약자다. 즉 탈영병 잡는 군인을 일컫는다. 군대에서 'D.P.' 보직을 받은 안준호(정해인)은 상병 한호열(구교환)과 팀을 이뤄 탈영병을 잡기 위해 그들이 머물렀던 삶의 궤적을 쫓는다. 탈영병 각자의 삶에 들어가 보고, 이해하는 순간, 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병역법 제3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문을 열며 나오는 문구다. 병역의 의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 군대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 된 곳에서 일부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한다.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군인과 그 병사들을 쫓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군대의 부조리한 모습도 노출된다.


'D.P.'를 본 사람들이, 특히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14초 만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오는 듯'이라는 반응을 보내는 이유다. 못이 박혀있는 벽에 후임병을 밀치는 선임병의 강압적인 모습, 어머니에게 받은 후임병의 편지를 소리내 읽으며 '너네 집 거지냐'고 말하는 폭언, 야간 근무 중인 후임병에게 자위 행위를 강요하는 모습 등 'D.P.'를 통해 보이는 군대의 민낯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충격적인 민낯의 힘은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왔다. 실제로 군무 이탈 체포조로 복무했고 웹툰 'D.P 개의 날'을 쓴 김보통 작가는 한준희 감독과 함께 각본 작업에 임했다. 한호열 역을 맡은 배우 구교환 역시 DP병들을 인터뷰하면서 캐릭터를 준비했다고 밝혔고, 임지섭 대위 역을 맡은 배우 손석구는 군대 있을 때, 육군 본부 소대장님을 자주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다고 전한 바 있다. 상병의 옷은 이등병의 옷보다 바래있는 것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해 낸 'D.P.'의 첫 촬영 당시 정해인은 "이병 정해인"이라고 관등성명을 해 NG를 내기도 했다. 정해인은 인터뷰에서 "재입대 한 것처럼 공포스러웠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정해인과 구교환은 더할 나위 없는 콤비 플레이를 펼친다. 탈영병들을 쫓는 이야기인 만큼, 사실 두 사람은 주인공보다 화자에 가깝다. 이들은 군대 이야기에 고개를 돌렸던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화면 앞으로 이끌어온다. 정해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대표된 말간 연하남의 얼굴 대신, 상처 가득한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D.P.'에 임한다. 웹툰에서와 달리 입대하는 이등병의 모습부터 시작해 시청자들의 몰입을 더한다.

구교환은 어쩌면 군대에서 닳고 닳은 상병 역으로 주변을 환기시킨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의 하이톤의 목소리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호열과 준호의 사이는 각자가 가진 사연들까지 궁금증을 더하며, 시즌 2까지 멱살잡고 시청자들을 'D.P.' 앞으로 끌어올 예정이다. 구교환의 말처럼 "에피소드를 기억하는게 무색할 정도로 친하게 지낸" 두 사람의 케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D.P.'는 정주행하게 하는 힘도 가졌지만, 그 이후에 더 강한 힘을 가졌다. 주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신의 군 시절을 회상한다. 'D.P.' 속 군대 상황과 자신이 군대있을 때의 상황을 비교하는 목소리부터, 간부 때문에 힘들었던, 선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들을 소환한다. 'D.P.'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질문 "그런데 왜 그랬어요?"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 된다. 군대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사회에서, 고개를 돌린 적은 없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정해인은 인터뷰에서 'D.P.'를 통해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군인 아저씨'하는데, 사실 20대 초중반이에요. 청춘인데요. 몸도 마음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했으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방관자인 적은 없었을까. 저 스스로에게도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 손자, 손녀인 우리 모두가 군대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각자가 느꼈던 그 방향으로 움직이다보면 커더란 사회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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