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주는 울림'…오영수·윤여정, 韓 최초 역사 쓴 K-70代 뽐

"제가 지금 나이 74세인데, 이 나이에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고…이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저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지난 해 3월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서 후보에 오른 후 전해진 소감 중 일부다. 후보로 올랐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윤여정은 수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시 74살의 나이였다. '한국 배우 최초'라는 바통을 78살의 배우 오영수가 이어받았다. 오영수는 오늘(한국시간 10일) 개최된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오영수의 수상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이른바 '백인들의 축제', '그들만의 축제'로 불렸다. 그만큼 비영어권 작품을 배척해온 관행이 있었다. '기생충'도 '골든글로브'에서는 비영어권(Non-English Language) 부문 작품상(Best Picture) 수상에 그쳤다. 지난해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두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쥔 배우 윤여정도 '골든글로브'에서는 침묵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톰크루즈는 골든글로브에서 받은 자신의 트로피 3개를 반납했고, NBC 방송국도 생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만의 축제가 정말 그들만의 축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오영수는 한국 배우 최초로, 함께 후보에 오른 '석세션'의 키에라 컬킨(Kieran Culkin)을 비롯해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Billy Crudup), 마크 듀플라스(Mark Duplass), '테드 라소'의 브렛 골드스타인(Brett Goldstein)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배우 최초의 기록이고, 나아가 골든글로브의 새 역사이기도 하다.

70대까지 열정으로 이어온 배우들의 땀과 눈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에 지켜보는 이들에게 뭉클함이 더해진다. 오영수는 1967년 극단 광장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1987년 국립극단에 들어가 전속 단원제가 폐지된 2010년까지 배우로 활동을 이어왔다. 연기경력 59년차에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오며 출연 작품만 200여 편이 넘는다. 그러면서도 욕심내지 않았다. 한 치킨 브랜드에서 제안한 광고 러브콜을 "작품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며 고사한 것은 그를 말해주는 유명하고, 단적인 일화다.

오영수는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덧붙이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와 고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목이다. 이는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소감을 떠올리게 한다. 윤여정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미나리'를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5명 후보가 모두 각자 다른 영화에서의 수상자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잖아요.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여러분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네요. 그리고 아마도 미국인들이 한국 배우를 대접하는 방법일 수도 있죠. 아무튼 감사합니다"라고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향한 존경을 표현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윤여정은 지난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화에 데뷔하게 된 것은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통해서였고, 데뷔작으로 대종상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아시아 배우 최초 미국영화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미국 아카데미 시식 여우조연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의 새 역사를 썼다. 오영수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 배우의 저력을 알렸다. 그런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삶에 대한 겸손함이 있다는 것. 특히, 1등에 대해 두 사람이 한 말은 어록으로 마음에 깊이 담겨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최고'가 아닌 '최중'을 이야기했다.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사람들이) 너무 1등, 최고를 막 (강조)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최중'이 되면 안 돼요? 그냥 같이 살면."

오영수는 지난해 10월 방송된 MBC '놀면 뭐 하니?'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은 당시 유재석과 함께 MC 석에 앉은 이미주를 울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어요. 1등이 되어야 한다, 2등 필요 없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겼잖아요. 다 승자예요.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승자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살면서) 적든 크든 많이 받아왔잖아요. 이제는 받았던 모든 걸 남겨 주고 싶은 생각이죠. 우리가 쉬운 얘기로, 산속을 가다가 꽃이 있으면 젊을 땐 그 꽃을 꺾어왔잖아요. 내 나이쯤 되면 그냥 놓고 오죠, 그대로. 그리고 다시 가서 보죠. 그냥 있는 그 자체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는 않죠."

그 길을 꾸준하게 걸어왔다. 윤여정과 오영수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쓴 '한국 최초의'라는 타이틀이 더욱더 값지고 소중하다. 꺾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여러 번 가서 보고 돌아오는 산속의 꽃처럼, 정말 뽐(뺴어난 것을 이르는 말)나는 이들의 이어질 앞으로의 새로운 역사를 대중은 기다리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