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터뷰] 이성경 "'괜찮아 사랑이야' 한순간 좋았던 작품으로 지나칠 수 없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하룻밤 재워줘요. 아저씨 집 넓잖아’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고등학생 오소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핑크색 투톤 머리에 교복 차림인 소녀는 자신에게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양다리가 맞는지 한 다리가 맞는지도 모르고 행동하는 ‘품행장애’ 청소년이다.
노희경 작가의 신작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 공효진, 성동일, 이광수, 진경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히 존재감을 뽐낸 이 아가씨는 주목받는 모델에서 배우로 영역을 확장한 신예 이성경이다. 인기 추리소설 작가 장재열(조인성 분)에게 “담배 사 먹어야지”라고 말한 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부르던 오소녀는 가공을 거치지 않은 원석, 이성경을 만나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평소 모델에 관심이 많았던 ‘괜찮아 사랑이야’를 연출한 김규태 감독의 딸은 오소녀 역에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한 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때 김규태 감독의 딸이 관심 있는 모델을 얘기해줬고 ‘요즘 대중이 모델에 관심을 많이 두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오디션을 진행하게 됐다. 오디션 당시 이성경은 4회까지의 대본을 보고 두 장면의 대본 리딩을 선보였다. 김규태 감독은 이성경의 연기력보다 이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묻고, 이성경 안에 오소녀의 모습을 많이 보려고 했다.
처음 연기에 도전한 배우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준비를 했을 거란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성경은 준비할 새도 없이 오디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제작진이 당부한 것은 “연기를 절대로 배우지 말라”는 것.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에 전화해 “연기 연습시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제작진이 하지 말라고 신예가 준비를 안 할 수 있을까. 이성경은 “요즘 아이들이 무서운 척하는 게 별생각 없이 그냥 말하잖아요. 생각 없이 툭 말했어요. 무언가를 사 달라고 조를 때도 ‘사줘~’ 이렇게. 감독님이 제가 편안하게 하도록 배려해주셔서 자연스럽게 나웠죠”라며 오소녀의 탄생 과정을 밝혔다.
섬세한 감독의 디렉션은 이성경이 대본을 보며 머릿속에 그린 오소녀 보다 더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여타 드라마 제작과정과 달리 매회 대본리딩 후 촬영에 들어가는 방식과 노희경 작가가 중후반부에 마지막 회를 탈고한 덕분에 이성경을 비롯한 배우들이 캐릭터와 시청자의 입장에 대한 생각,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됐다. 신예 이성경의 출발은 꽤 좋았던 셈. 이성경은 “재열이가 이럴 때 이래요? 이해 안 되지 않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해요. 작가님이 공부하신 내용을 듣다 보면 이런 아픔이 있구나, 이런 치료 방법이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한 캐릭터에 깊이 있는 배경을 듣기도 해요. 배우들도 치유됐고 생각의 폭도 넓어졌죠”라며 대본 리딩의 좋은 점에 대해 언급했다.
극중 이광수가 맡은 박수광이 앓던 투렛증후군은 방송 전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등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적어도 시청자들과 누리꾼들은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조절이 안 되는 생리적 현상이 많을 뿐, ‘다른 방식의 기침이구나.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겠구나’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됐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인식의 전환을 이뤄냈고, 그 주역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이성경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로맨스 연기를 펼친 이광수와는 뽀뽀신을 통해 두 사람의 치유 과정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다. 이성경은 “소녀와 수광이가 뽀뽀하는 것에 서툴고 어색한 사람들이어서 저희가 했을 때 더 잘 어울렸던 것 같고 서로 치료해주고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아픔을 보듬고 되갚아주는 장면 같아서 좋아요”라며 따뜻했던 뽀뽀신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인터뷰 도중 ‘재열 아저씨’라며 조인성을 아저씨라 부른 이성경에게 “조인성 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오빠라고 하는데 자꾸 재열 아저씨라고 표현해요”라며 터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떤 선배가 특히 예뻐해 주냐고 묻자 “모두”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이성경은 “제 신이 있을 때 본인이 대사를 안 쳐주고 가셔도 되는데 굳이 남아서 맞춰주세요. 배려가 넘치고, 후배로서 선배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큰 선물 같았죠. 인성오빠의 어떤 모습, 효진언니의 어떤 모습은 그 하나하나가 퍼즐조각처럼 완벽했고, 한순간도 안 빠지고 완벽하게 멋진 모습인지 많은 걸 배웠어요. 저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한순간에 좋았던 작품으로 지나칠 수 없어요, 절대로. 사람들한테 신인이 운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될까 봐 싫어요”라며 인터뷰 내내 작품과 제작진, 동료 선후배 배우들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3, 40줄이 되는 답변을 줄줄이 읊었다. 비단, 신인이 대선배와 훌륭한 제작진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형식적인 답변이 아닌 그 순간을 놓칠까 두렵고, 잊기 싫어하는 소녀의 마음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본 이성경은 늘씬하고, 매우 긍정적이며, 예쁜 라이징 스타로 기억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찍는 동안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모델 활동할 때보다 무려 5kg이나 찐 상태로 작품에 들어갔고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한 시기였다. 팬들이 “언니 예뻐요~”라고 칭찬해도 “실물 보고 실망하셨죠? 죄송해요”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를 하며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지금의 내 모습 자체로도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용기를 갖게 됐다. ‘칭찬 받아들이기’ 운동을 결심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저를 위해서 살 빼라고 관리하라고 해줬던 말인데 그때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죄책감이 생겨서 내 탓으로 돌리면서 상처받고 잘못을 돌이켜 보지 못하면서 ‘내탓, 내탓, 내탓’ 하면서 작아지고 압박감을 받은 거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내 일에 재미가 없고 자신감도 없고 열정도 사라지니 관리가 더 안 되고 악순환이 되더라고요. ‘괜찮아 사랑이야’를 하면서 나를 인정하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잖아. 부족했더라도 나를 인정해줬어요. 10점이라도 최선을 다했잖아 괜찮아 라고요. 그러다 보니 회복됐고 남들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됐죠.”
다른 사람의 상처는 치유해주고 싶어 하면서 왜 자신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까. 힘들고 지칠 때 주저 말고 마음의 병을 고쳤으면 좋겠다던 이성경에게 ‘성경 씨는 나름의 답을 찾은 거죠?’라고 물었더니 “저도 찾아가고 있어요. 많이 좋아졌고, 그러다 보니 행복해졌어요”라는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받았던 사랑을 많은 분들께 전달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이성경은 뛰어난 캐릭터 해석 능력과 작품에 대한 심미안이 있는 근래에 보기 드문 신예다. 앞으로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어떤 작품들로 채워질지 기대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