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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제훈, "영어 연기? 멋있지만 의미 담고 싶어"
“’박열’ 찍고 바로 촬영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정말 쉬고 싶었거든요. 분위기는 사뭇 달랐죠. ‘아이 캔 스피크’는 정말 따뜻한 영화예요. 제 상대역인 나문희 선생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바른 청년이다. 언론시사회 후 이제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 나문희를 정성스럽게 챙겼다. 두 사람의 투톱 연기는 영화 속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서로 성격은 달랐지만, 외국어 하나로 소통을 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런 이제훈에게 나문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본인 스스로가 “나문희의 서포터즈”라고 자처했다. 전작 <박열> 홍보기간에도 이 영화의 해외촬영 분량이 남았던 터라, 촬영장을 내내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그였다. “머나 먼 미국에서 나문희 선생님의 청문회 장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울컥 거리더군요. 촬영 중이었지만, 선생님의 연기 보다 열정이 더 커져 보였어요. 비록 대사였지만, 제가 선생님께 전한 ‘하와유?(How are you?)’란 한 마디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애잔한 장면이었습니다.”
이제훈은 원칙과 절차가 견고한 9급 공무원 ‘민재’의 모습을 한결같이 보여주면서, 시장 상인의 대표였던 옥분, 나문희와 호흡을 맞출 때 연기에 대한 계산이 아예 필요 없었다고 했다. “리액션이 절로 나와요, 하하! 선생님과 처음 만났을 때도 너무 자연스럽게, 아들, 손주 대하듯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죠. 더군다나 제가 대본을 보고 리딩 할 때마다 잘한다고 계속 칭찬만 해주시니 더더욱..(웃음)"
물론, 두 사람의 연기가 전부는 아니다. 이제훈이 몸 담았던 구청의 직원들, 나문희가 속한 시장의 이웃 상인들 모두가 제각각 캐릭터가 분명해 영화의 부분부분을 꼼꼼하게 채워줬단다. “박철민 선배님의 빵빵 터지는 애드리브부터, 정연주 씨의 엉뚱발랄함까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어요. 상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장 쪽도 그랬죠. 저 중심 보다는 우회적으로 그들을 바라 보았어요. 이 작품이 제겐 준 선물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더군요. 모든 것이 저와 제 ‘가족’ 같았습니다.”
<아이 캔 스피크>의 ‘민재’는 앞서 언급한대로 영어회화의 달인이다. 이제훈이 일본어를 거쳐 이번엔 영어를 무한하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을까. “평소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죠. 미국 드라마도 그렇고요. 언어가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이유 없이 멋있어 보일 때가 있었는데, 저 혼잣말로 그런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웅얼웅얼 따라 한 거죠. 그게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습니다.”라고 웃음 짓는다.
이제훈은 탁월한 외국어 연기를 통해 배우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그저 멋있는 척 일부러 이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거든요. 작품이 주는 이야기가 제겐 더 소중해요. 굳이 뼈아픈 과거사를 일부러 끄집어내 또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 이 작품이 주는 여운들, 가치들을 통해 제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과, 좋은 사람들과 그런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제가 선택한 배우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훈은 마지막으로, <아이 캔 스피크>는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한 안정제라고 했다. “힐링이 되었고, 힘이 되어 준 작품이었습니다.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오히려 힘든 거 보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지네요.(웃음) 억지가 아닌, 웃음과 눈물 모두 다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훈과 나문희가 주연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민원 건수만 무려 8천 건에 달하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 할매 ‘옥분’과 융통성 전혀 없는 9급 공무원 ‘민재’가 영어를 통해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웃음과 감동이 있는 휴먼드라마이다. 9월 21일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