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표 인터뷰 / 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모범생 선우와 '질투의 화신' 젠틀한 재벌남 고정원은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캐릭터다. 선우는 맛없는 엄마의 도시락도 투정 없이 먹는 효자인 데다 동생 진주를 잘 돌보는 다정한 오빠이자 짝사랑하는 누나에게 고백하고 기습 볼뽀뽀까지 하는 심쿵 연하남이다. 고정원은 표나리의 말 한마디까지 기억하며 챙겨주는 세심한 인물이다. 올 한 해 고경표는 두 편의 화제작에서 여자들의 로망남을 연기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더스타와의 인터뷰에서 고경표는 "얼떨떨하면서도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뿌듯해요"라며 미소 지었다.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였던 '응팔'을 만나 '질투의 화신'으로 우뚝 서기까지 고경표의 시간을 되짚어봤다.

'응답하라 1994' 오디션을 먼저 본 고경표는 그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다음 시리즈였던 '응팔' 오디션 때는 그가 출연한 30분짜리 단편영화 '인생은 새옹지마'를 본 이우정 작가가 "타지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는 장면을 보고 선우 이미지와 적합하다고 생각"해 먼저 미팅 겸 오디션을 제안했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을 때 고경표는 이미 선우가 돼 있었다.

"오디션 이전에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받으면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해요. 그 모습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로 찾아가죠. '질투의 화신' 미팅 때도 '응팔'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들떠 있는 모습이 아닌 고정원의 목소리와 말투로 갔어요. 처음 만날 때부터 고경표가 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준비해서 갔어요. 어쩌면 이게 제 오디션 비법인지도 몰라요."


'질투의 화신'에서 고경표는 매너있고 허례허식 없고 사랑에 진중한 의류재벌 3세 고정원(36) 역을 맡았다. 고경표의 상대역인 공효진(37), 조정석(37)은 제 나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90년생으로 올해 27살인 고경표는 실제 나이보다 9살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선배들 사이에서 실제 나이보다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고경표에게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배우니까 소화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죠. 저보다는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고등학생 역을 하다가 실제 나이보다 10살 많은 역할을 하게 됐잖아요. 어떤 분은 '선배들 기에 눌리지 않았냐'는 질문도 해주셨는데 기우였죠. 참 좋은 환경에서 작업했어요. 리허설도 많이 하고 피드백도 받고요. 고정원이 정적인 캐릭터라는 것도 의도된 약속이었어요. 아낌없이 주는 키다리아저씨 같은 모습이요."

일각의 우려를 말끔히 씻기 위해 고경표는 말투, 제스쳐, 의상까지 상당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다. "제 색깔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좋았어요. '후반부에 서운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을 땐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님의 고충이나 현장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오히려 서운하게 느껴주신 분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제게 관심과 사랑이 많다는 거니까 성취감이 커요." 그리고 그는 캐릭터를 즉시 하려고 했다. "나리를 바라봐주고 싶었고 힘든 모습을 토닥여주고 싶었어요."


서숙향 작가의 대본은 어순이 바뀌어있는 말투였다. '오늘 밥을 먹을 거야 나는'과 같아서 헷갈릴 때도 있었다. 고경표는 주로 감독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이를테면 '감자별' 때는 말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고, '내일도 칸타빌레'나 '이웃집 꽃미남'을 할 때는 애드리브가 난무했다고.

"연기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반영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감독의 요구를 잘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들이나 학교 후배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찾아요? 어떻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요?'라고 묻는데 저는 텍스트를 잘 봐야 한다고 해요. 말이 주는 어감을 잘 읽다 보면 캐릭터나 인물의 관계가 자리 잡게 되고, 보충해야 할 것들을 보충할 수 있게 돼요. 작품을 할 때마다 노하우들이 쌓이게 되고요."

할리우드 배우 히스레저가 롤모델인 고경표는 "도전을 반갑게 생각"한다. 변신이 즐겁고, 다양한 연기 접근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게 연기를 즐겁게 만든다고. "고경표를 떠올렸을 때 그동안 작품을 통해 보여드렸던 이미지들이 쌓여서 기대하게 되고, 또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코믹하고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지금은 이런 연기도 해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매우 귀중한 경험이죠."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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