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영화 '부산행'의 공유-김수안 / 조선일보 일본어판DB, 호호호비치 제공


“‘부산행’을 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그린 그림은 너무 서글펐어요. 서글픔의 이유는 영화를 보신 모든 분이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부산행’에서 공유는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러 딸 수안과 함께 부산행 열차에 오른 펀드매니저 석우 역을 맡았다. 석우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열차 안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도망갈 수도, 숨을 곳도, 믿을 사람도 없는 공간에서 석우는 조금씩 변화한다.

공유는 이 영화에서 사회자 역할을 한다. 극의 중심에서 은은하게 서 있는 인물이 그가 연기한 석우다. 주인공이기에 분량도, 비중도 절대적일 거라는 예상이 틀렸다는 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알 수 있다. ‘부산행’의 메가폰을 잡은 연상호 감독도 공유가 “더 돋보이려고 하지 않아서 고마워했다”고.

연기자 입장에서는 캐릭터의 비중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공유가 ‘부산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기획이었고 둘째는 감독님에 대한 힘이 컸죠. 우리나라에서 85억을 들여서 좀비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물론, 애니메이션 감독이 실사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처음엔 물음표가 그려졌죠. 그런데 저로서는 그 조합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고 신선했어요.”

이어 공유는 “예산을 적게 들인 영화도 아니고, 인물도 많이 나오는 영화인데 첫 실사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는 게 연기자 입장에서 당연히 더 걱정되는 일”이라고 했다. 연상호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공유는 연 감독의 호기로운 모습에서 유쾌함을 느꼈고, 자신과 맞는 점도 발견했다.

“쉽지 않은 기획을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람에 대한 관찰이 필요해요. 나랑 코드가 맞는지, 감성이 맞는지. 연상호 감독님은 새로운 부류였어요. 처음부터 이미 본인을 드러내면서 ‘뭘 믿고 이렇게 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고 과감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확신했던 것 중의 하나는 직관력이 뛰어나다는 거예요. 겉으로는 장난을 치며 본인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예리하게 뭔가를 꿰뚫어보고 있으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점차 감독님을 신뢰하게 됐어요.”


이 영화에서 공유는 유일하게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석우가 처음부터 일에 미쳐 있는 인물은 아니”라며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석우도 보통 아빠예요. 표현을 잘 못 해도 딸에 대한 사랑은 깊죠. 일에만 미쳐 있는 이유는 본인의 욕심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가장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책임 때문이에요. 재난 상황에서 석우가 하는 행동도 저는 충분히 이해가 돼요.”

공유는 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석우를 연기하기 위해 극중 딸로 나오는 아역 배우 김수안과 거리를 뒀다. “수안이가 연기를 잘해도 혹시나 카메라 밖에서 쳐다보듯이 볼까 봐 노파심에 나름의 거리를 뒀어요. 현장에서 수안이가 예쁨을 많이 받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동참하고 싶잖아요. 저도 아이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어른들은 수안이한테 서로 예쁘다고 하면서 수안이가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하면 성취감을 느끼고 그랬어요. 저도 거기서 마음속으로 ‘나도 하면 잘해줄 수 있는데’ 싶었죠.(웃음) 다른 사람들이 두, 세 번 할 때 저는 ‘어 왔네’ 하고 무심한 척했어요. 나중에 끝나고 나서 감독님이 수안이가 (제 마음을) 모르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참 똑똑하고 유연해요.”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해나가던 공유가 이번에는 연상호 감독과의 일화를 끄집어냈다. “어느 날 감독님이 술 한잔 하자고 하셔서 나간 적이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제게 고마운 게 있었는데 ‘고맙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얘기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수안이 얘기도 해주시고요. 감독님이 다 알고 있었다고 얘기해주시는데 짠했어요. 이미 한참 지난 후였고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다고 하니까 감동적이었고 울컥했어요.”

“더불어 제가 찍었던 첫 신이 주차장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신이었는데, 감독님이 (다른 배우의 예를 들면서) 그 배우가 연기하는 톤을 내심 기대하셨대요. 공유를 바꿔보고 싶은 욕심이 있으셨던 거죠. 근데 첫 컷을 찍고 난 다음에 그 생각을 안 해야겠다고 하셨대요. 그 뒤로 감독님은 석우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공유가 하는 대로 두면 되겠구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한테는 좋은 의미로 느껴졌어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울컥했죠.”


인터뷰를 진행한 지 1시간이 꽉 찰 무렵, 공유가 말했다. 마동석과의 인연에 대해 유쾌한 입담을 늘어놓고, 하반기 행보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얘기했던 그는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영화 ‘부산행’이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끝인사에 담아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석우가 느끼는 감정을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서글프고 화나는데 눈물은 안 나는 먹먹함이 있더라고요. 감정의 크기가 무거워요. 1차원적으로 화난다, 슬프다고 표현하기에는 복합적으로 느껴져요…(생략) 제가 처음 ‘부산행’ 책을 받았을 때 서글펐어요. 책을 읽고 난 후에 머릿속에 그림이 연상되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부산행’이 그랬어요. 그림이 다 너무 서글펐죠. 서글픔의 이유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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