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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원근 "멋있는 학원물 남주 탈피, 진정성으로 승부"
KBS 학원물은 스타 등용문으로 통한다. 2015년 하반기는 KBS ‘발칙하게 고고’의 이원근이 남주 자리를 꿰찼다. 잘해야 본전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다. 대작과의 경쟁으로 대진운은 좋지 않았지만, ‘발칙하게 고고’는 교내 위선과 부조리를 그리며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내 삶의 진정한 가치’를 되묻는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지상파 첫 주연작이라 큰 부담이었어요. 극을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잠을 안 자고 쪽 대본을 숙지하는 게 가능할지 체력 관리도 걱정됐고요.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계속 얘기하면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부담감이 많았지만, 나중에는 부담감도 풀리더라고요.”
지금의 학교가 어떤지, 학생들은 어떤 모습인지를 담아내는 그릇이 ‘학원물’이다. 성적을 ‘강요’하고, 때로는 부당함도 감수하길 바라는 어른에게 아이들은 패기 있게 소신을 말하기도 한다. 학원물 남주는 대체로 ‘반항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독님과 얘기한 게 같은 학원물이라도 제 캐릭터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후아유-학교 2015’나 ‘학교2013’ 등 근래에 방영한 학원물은 다 봤는데 멋있고 남자다운 캐릭터가 많았어요. 저는 복합적으로 김열(이원근)의 아픔까지 보여줘야 했어요. 그래서 진정성이 담긴 모습을 보여주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원근과 김열의 공통점은 없었다. 이원근은 말도 느리고 차분한 데 반해, 김열은 리더십이 있고 생기 넘치는 캐릭터다. ‘발칙하게 고고’ 바로 전에 촬영한 영화 ‘여교사’의 제자 재하(이원근)도 김열과 정반대로 무거운 캐릭터다. 영화 촬영 다음날 바로 드라마를 찍어야 해서 적응하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친구를 골탕 먹이는 신이 주어졌을 때 감독님께서 ‘말투도 신경 쓰지 말고 너 편한 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제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수록 캐릭터 구도를 잡아주셔서 편했어요. 웃음에도 단계가 있는데 멜로가 전개되기 전까지는 활짝 웃지 말라고 주문하셨고요.(웃음) 절대로 활짝 웃는 모습은 보이지 말라는 게 팩트(사실)였어요.”
김열은 제 의견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하는 ‘똘똘한’ 인물이다. “의사 표현이 확실하니까 감정 전달도 그렇고, 속 편할 것 같아요.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할 때도 많은데 (김열처럼 제 의견을 속 시원히 말하는) 그럴 때는 부럽더라고요.”
김열의 아킬레스건은 아버지의 학대로 자해를 일삼는 ‘절친’ 서하준(지수)이다. 또 다른 그림자는어린 시절 헤어진 부모로부터 방치 당한 이후 거리를 두고 지낸 아버지다. 겉보기엔 외모, 성적, 성격까지 뭐 하나 빠진 게 없는 ‘엄친아’지만 이면의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저도 처음엔 의아한 부분이 있었어요. 다들 과거에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만 안 나왔거든요. 계속 밝은 척하고 갑자기 멜로를 해서 전개가 약간 빠르구나 싶었죠. 캐릭터에 흠이 새기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는데 7회에 과거 회상 신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려져 이해가 됐어요. 그 신이 빠졌다면 가벼운 아이라고 했을 텐데 김열이 이런 아픔을 숨기기 위해 밝은 모습을 하고 어른들과의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정리됐죠.”
◆‘커플’케미 정은지 vs ‘절친’케미 지수
시청자를 브라운관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1인칭 시점의 카메라 기법과 이원근의 거침없는 ‘심쿵’ 대사 향연은 드라마에 핑크빛을 뿌렸다. ‘병원신은 옳다’는 반응이나, 어학실 심야영화 데이트가 심쿵 지수를 높였다 등의 ‘로맨스’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저는 개인적으로 4회 때 은지랑 버스 타는 장면이 유치한 듯 귀여운 듯 좋았어요. 또, 4회인가? 5회 엔딩에서 키스하려고 하는데 은지가 자는 장면도 우리가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은지가 취한 연기를 잘했고 저도 그런 은지를 보면서 귀여워하는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병원 신은 35~40시간 정도 깨 있던 상태에서 빠르게 찍은 장면이에요.(웃음)”
그는 풋풋한 커플 케미를 발산한 정은지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은지는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요. 촬영을 안 하거나 끝나더라도 연락하거나 만나면 정말 잘해요. 사람이 피곤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게 없어요. 예를 들면 바빠서 전화를 못 받고 끊으면 나중에 다시 전화해서 ‘아까는 이래서 좀 일찍 끊었어’라고 친절히 설명해줘요. 정말 착해요.”
이 드라마에선 러브라인만큼 훈훈한 브로맨스가 두드러졌다. 이원근과 지수(서하준 역)가 강당에 누워 얘기하는 마지막 회의 장면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친근하게 그려졌다.
“제가 뛰어가면서 슬라이딩해서 들어간 게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슛! 하고 가니까 딱 들어가지더라고요.(웃음) ‘야~ 잘 들어갔다’ 하고 고개를 싹 돌리는데 갑자기 그 마음이 들더라고요. ‘뭐 하냐’고 대사할 때는 현실이었어요. 대사는 잊고 우리가 느끼는 대로 호흡했어요.”
첫 촬영 때는 서먹했던 지수와는 이튿날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감독조차 “언제 친해질 거냐”고 걱정할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두 사람 때문에 현장이 시끌시끌해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서로 닮은 점이 많아서였다.
“데미안 라이스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취미도 다 똑같아요. 요즘 스타크래프트 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희는 새벽에 같이 피시방 가서 게임도 하고 최근에 영화 ‘마션’도 같이 봤어요. 지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도 장난치면서 진짜 친구처럼 지냈어요.”
‘발칙하게 고고’는 점수 만능주의가 부른 사교육의 폐해를 날카롭게 담는다. 이 작품에 출연하며“지금의 청소년들이 학생답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원근은 “하나의 문제가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8살의 이원근은 학업에 매진해야만 하는 여느 또래와 같았지만 마음속에 재미있는, 좋은 추억을 만들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 그는 청춘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발칙하게 고고’를 떠나보내며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10대 학생들이 학생다움을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예쁘게 화장하고 교복 치마를 줄이고 염색하는데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들이에요. 학생다운 모습을 지우고 감추기보다는 그 느낌대로 있으면 좋겠어요. 말간 모습이 더 예쁘기도 하고 저는 그 모습이 부럽거든요. 좀 더 학생다움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