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박보영 더스타 인터뷰 /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말도 안 돼! 어떡하지, 말도 안 돼요. 10년이라니요. 큰일 났어요."
'어느덧 10년 차 배우'라는 말에 박보영이 소리를 질렀다. 아마 대중들도 같은 소리를 지를 것 같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흐른게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박보영은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다져가는 중이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보영은 확실히 그전과는 달랐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은 1938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여학생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담았다. 박보영은 계모의 손에 이끌려 <경성학교>에 오게 된 병약한 소녀 '주란'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를 받은 것 중에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없어서 시대가 주는 점도 독특했어요. 연덕(박소담)이와 주란이라는 두 소녀가 헤쳐나가는 과정들, 시련들이 먹먹하기도 했고요. 해보지 않은 감정 표현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욕심도 많이 났죠." 박보영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택한 이유다.

욕심이 난 만큼 힘들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박보영에게 익숙지 않은 폼들이 많았다. 와이어를 타거나 사람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탁' 잡아 올리는 연습을 계속했다. 액션을 가르쳐주신 분께 인사할 때도 그분의 목을 잡으면서 했다. "이번에는 어땠어요?"라고 되물으며.

병약하고 의기소침한 '주란'이는 '연덕'이를 만나서 밝아지고 건강해진다. 그 변화의 폭은 박보영에게 고민의 몫이었다. 그래서 이해영 감독님과 찾은 단어는 '쭈구리'였다. "더 위축되게 혹은 더 자신감 있게, 이런 표현보다 '쭈구리'라는 단어를 썼어요. 제가 '저 너무 쭈구리 같았어요?'라고 묻기도 했고요. 감독님께서 '오늘 주란이는 왜 이렇게 쭈구리야?' 하시면 더 씩씩하게 표현하기도 했고요."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스틸 이미지


다양한 표현 속에서 박보영에게 남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관객의 몰입감이 떨어지는 순간 주란의 판타지가 사라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박보영은 실제 '주란'이 되어야 했다. "제가 연기에 집중이 안 됐다고 느낄 때, 카메라가 보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보여요. 집중하면 안 보이거든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다들 밤새고 예민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도 스태프들이 다들 배려해주셨어요. 제 눈에 서서히 카메라가 안 보이게끔. 이렇게 만들어주시니까 정말 감사했어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현장 분위기는 실제 여학교 같았다. 소녀들은 현장에서 계속 재잘재잘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냥 여동생 같은 박보영은 학생들 중 가장 선배였다. 이해영 감독은 "현장을 쥐락펴락한 것은 (박)보영 씨였다. 상대역이 거의 신인들이라 미숙한 실수들이 잦았다. 하지만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짜증 내지 않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대단한 배우"라고 현장을 회상했었다.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알려줄 수 있는 한에서 그런 것들은 알려줬어요. 기술적인 것들이요. 현장에서 쓰는 낯선 용어들 같은 경우였죠. 감독님의 추상적인 디렉션을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기도 했고요. 제가 연기를 하면 앞에서 모여서 보고 있어요. 제가 감정 연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놀라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잘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만나 뵈었던 선배님들이 다 매우 좋은 분들이셔서 저도 그런 선배가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어느덧 선배의 자리에 있는 그다. 하지만 10년 차 배우라는 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아직 낯설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작품을 많이 못한 게 가장 아쉬워요"라고 토로한다.

"동안, 소녀, 교복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자꾸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내가 빨리 벗어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고민이 많았던 적이 있었어요. 어떤 작품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또 어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지금의 저한테 너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한 작품이라도 더 하고, 그렇게 부딪혀봐야 '이 정도 했으니까 다음에는 좀 나아지겠지'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건데 뭔가 얽매여 있다 보니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안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박보영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다섯 번째 교복을 입었다. "제가 어색하고 아니고는 사실 제 직업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시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아예 안 보시면 소용이 없잖아요.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까지 하고픈 마음은 없어요. 이만큼 보여드렸으면 조금 더 나아가서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에요."

박보영은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리고 대중들은 앞으로 처녀 귀신이 된 박보영을 '오 나의 귀신님'에서, 사회 초년생인 박보영을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답을 찾았어요. 이제 주위에서 하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지금 배우로서의 삶도, 제 개인적인 삶도 만족스러워요. 더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대중들에게 스타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사실 이제 없어요. 그냥 연기로 좀 더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에요. 앞으로도 지금 이 느낌을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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