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옹 인터뷰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임슬옹하면 댄디하고 부드러운 매력이 떠올랐다. 자타공인 ‘사고 안 치는 아이돌’ 2AM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예능보다는 연기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모범생 스타일’에 가까워 보였다. tvN ‘호구의 사랑’을 하기 전까지는. 고등학생 땐 인기 꽤나 있었던 ‘얼짱’ 출신이었던 임슬옹이 붕어빵 범벅이 되어 기절하고, 만화책에서나 볼법한 동성애 연기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임슬옹의 변화가 반가운 건 왜일까.

‘개인의 취향’(2010)에서 유쾌한 매력의 대학원생 태훈을 연기할 때도 ‘천명’(2013)에서 훗날 인종이 되는 이호를 연기할 때도 임슬옹에 대한 시선은 연기하는 아이돌로 여겨졌다. 그런 그가 “좋으면 박수를 쳐가며 좋아하고 방향성이 틀어질 땐 이유를 설명해주는” 디렉션이 정확한 표민수 감독을 만나 새로운 매력을 꺼내기 시작했다.

“정극과 코미디의 선을 어떻게 맞출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진지한 신에서는 정극 연기를 해야 했고, 반면에 개연성 없이 코미디로 풀어야 하는 신도 있었는데 문제는 감정신을 하다 갑자기 코미디로 끝내야 하는 신이었어요. 화내다가 갑자기 뚝 끊고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없으니까 많이 생각하고 현장에 나갔고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만들어 나갔죠.”

가장 늦게 ‘호구의 사랑’에 합류한 임슬옹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캐릭터와 작품을 분석할 시간이 부족했다. 표민수 감독의 서술형 연기 지도는 임슬옹이 신에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정답지였다. ‘호구의 사랑’이 임슬옹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 작품인 것은 분명했지만, 평생 고통받는 ‘흑역사짤’의 탄생도 가능케 한 작품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철이가 호구한테 붕어빵을 맞는 장면은 그동안 재수 없었던 강철이가 여기서 제대로 망가져야 풀린다는 얘기가 현장에서 나왔어요. 사람들한테 사이다가 돼야 한다고요. 고속으로 때리는 것과 더 못난 표정을 지으면서 코피를 흘려서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해소해주고 강철이의 원래 모습도 발견해주자고 조율했죠.”

실제 주량이 맥주 두 캔인 임슬옹은 경험에 비춰보기 힘든 만취 연기도 귀엽게 소화했다. 임슬옹은 술에 취하면 본능적으로 쓰러지지 않고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대사 전달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호경이와 술을 마시면서 했던 대사인 ‘내가 게이인데 여자인 너랑 어딜 가냐. 너랑 나는 동성인데 어딜 자꾸 가자고 하냐’고 했던 말들은 고민 끝에 나온 임슬옹의 애드리브였다.

“어색하게 연기하는 게 더 민망할 거라는 생각을 무대에서도 살면서도 느꼈기 때문에 이왕 망가질 거면 제대로 망가지기로 했어요. 대신 제대로 망가지되, 어떻게 망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적당히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만 좋다면 이보다 더 망가지는 역할도 좋고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열려있기 때문에 퀴어 영화도 문제 없죠.”

최우식 임슬옹 / 사진: tvN '호구의 사랑' 제공


‘호구의 사랑’에서 임슬옹과 이수경의 커플 케미만큼 시청자의 애간장을 녹였던 건 최우식과의 브로맨스였다. 호구로 인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온 강철은 호구를 벽에 밀치고 ‘네가 좋아하는 게 도희냐’고 거칠게 몰아붙인다. 마치 로맨스 드라마에서 상남자인 주인공이 가녀린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격정 멜로’신이 임슬옹과 최우식 사이에서 탄생했다.

“NG를 얼마나 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둘 다 상남자여서 다가가는 순간 죽겠더라고요. 거기다 딸랑이까지 들고 있어서 ‘딸랑’ 이런 소리도 들리고. 제가 ‘누굴 좋아하냐’고 대사할 때 우식이가 제 코랑 입에서 나오는 숨 때문에 오글거려서 미쳐 하더라고요. 주위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고 참다가 터트려서 NG도 났고요. NG날 때마다 웃고 난리였어요.”

호구와 도희의 러브라인 만큼이나 강철과 호구의 브로맨스가 드라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에 임슬옹과 최우식의 동성애 연기는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큰 파이였다. “정극처럼 표현해야 하니까 호구를 진짜 좋아하는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순발력을 발휘했던 게 순간 우식이에게서 포인트가 되는 예쁜 모습들을 찾아봤어요. 남자로서 멋있고 매력있는 부분을 찾아서 잠깐의 스위치가 ‘예쁘다’고 켜지는 순간의 감정을 가지고 대사를 했죠.”

보통 동성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연기한다고들 한다. 임슬옹과 최우식은 “상남자라서” 어려웠다고 한목소리를 냈던 터라 “최우식의 어디가 예뻤냐”는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별 이야기를 다 한다”면서도 임슬옹은 순간 설레는 마음으로 집중했다고 말했다.

“(최우식의) 눈매가 귀엽고, 왜소해서 조그만 하고요.(웃음) 제가 동성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순간의 호감으로 집중해서 연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게 제가 무언가를 도와줬다는 걸 안 호구가 ‘강철아’ 이러면서 저를 안으면 제가 ‘심장’을 움켜쥐잖아요. 그 신 찍을 때 제가 우식이한테 ‘더 와서 비비면 내가 더 심쿵할 테니까 더 세게! 더 세게!’라고 말했어요.(웃음)”


그렇다고 임슬옹에게 코믹 연기에 바친 굴욕, 오글거리는 동성애 연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할 줄 아는 ‘로맨틱한’ 호경이 강철의 곁에 늘 있었고 그의 부족한 점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호경과 강철의 키스는 뜨거웠다.

“몰랐는데 수경이가 진짜 첫키스였대요. 키스신 끝나고 저랑 우식이랑 둘이 가서 ‘키스 잘한다. 국가대표 키스선수네’라고 장난치고 놀렸는데 너무 미안해서 문자로 사과했어요. 사과하면서 첫키스였냐니까 그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장난치느라 까맣게 잊은 거죠. 수경이가 애는 애인 게 ‘미안하다. 수경아 어떻게 하냐’니까 레고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임슬옹과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틀에 가두지 않을 때 의외성이 발견되고, 그 의외성이 배우의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더러 존재한다. 지금이 배우 임슬옹의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듯 했다. “신선한 배우가 되기 위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겠다”며 최종 목표를 말하던 임슬옹. 그에게 ‘모범생 스타일인 가 보다’는 마지막 말을 건넸을 때 “겪어보면 다르다”며 호탕하게 웃던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그는 ‘변화의 여지’를 계속해서 내뿜고 있었다. 최근 싸이더스HQ로 새 둥지를 튼 임슬옹의 변화, 그리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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