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강하늘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드라마 '상속자들' 이후 영화 <소녀괴담>을 통해 스크린에 첫 주연으로 섰을 때였다. 거의 90도로 받는 사람도 황송해지는 인사를 건넨 강하늘은 "제가 먼저 찾아뵈어야 하는데"라며 가식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예술관이나 연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놀란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들었었다.

지난해 tvN드라마 '미생' 열풍이 불었을 때, 강하늘은 그 중심에 있었다. '장백기'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어느 때보다 그의 주가가 오른 시기였다. 다양한 작품들과 광고 등 수많은 러브콜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연극 '해롤드 & 모드'를 선택했다. 연극 무대는 위험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특히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연예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강하늘은 "굉장히 쉬운 선택이었고, 당연한 선택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우선 ('해롤드 & 모드'를) 결정하게 된 건 '미생' 후반부였어요. 그때 제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미쳤냐, 돌았냐' 였어요. 그리고 '너 정말 어려운 선택한 거다'라는 말이랑요. 저를 되게 모르시는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굉장히 쉬운 선택이고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제 주변에서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연극을 올렸는데 2, 3주 만에 문 닫고 그런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이 옆에서 눈물 흘리면서 소주 마시는 걸 보면, 그리고 저희 부모님도 저를 가지시면서 연극을 그만두셨고. 그런 게 울분이 있었나 봐요."

이어 강하늘은 그들을 보며 자신은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정말 좋은 무대만을 선택할 테니까,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많은 분이 연극 무대를 찾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방송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미생'이 잘 됐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어요. '지금 연극을 하자.' 저도 사람이니까 흔들린 적도 많았어요. 내가 잘 못 선택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저희 연극이 누적 관객 만 명을 돌파했거든요. 연극 만 명 돌파가 대한민국 최초예요. 이게 영화에서는 2천만 가까이 모은 거랑 비슷한 거래요. 거의 항상 매진이었거든요. 그 얘길 들으니 마냥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위안받는 기분이었어요. 내 선택이 잘못된 길은 아니구나, 틀린 선택은 아니구나."


'해롤드 & 모드'를 강하늘은 원캐스트(one cast)로 임했다. 연극을 공연할 때, 하나의 배역에 두 배우가 배정된 '더블캐스트(double cast)'가 보통이다. 하지만 강하늘은 연극의 모든 공연에서 주인공 '헤롤드' 역으로 모든 무대에 섰다. 이것 역시 강하늘에게는 "당연한 선택" 이었다.

"무대는 저에게 공부 같은 거예요. 드라마랑 영화를 촬영하면, 순발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순발력이라는 게 할 수 있는 것들만 빨리 써먹는 거잖아요. 할 수 없는 걸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 스스로 제가 비어있는 걸 느끼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연극을 선택한 거고요. 공부는 시간이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원캐스트로 하고 싶었어요. 더블캐스트로 하자는 말도 있었는데 제가 욕심을 냈어요. 원래 공연할 때는 공연만 하자였는데 개봉이 겹치면서 여러 일이 많아졌네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과거 <소녀괴담>으로 만났을 때 그는 "배우 강하늘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 앞에 감히 '배우'라는 말을 걸 수가 없다고. 그 후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좀 자연스러워졌을까?

"그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그 꿈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되게 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불가능한 꿈을 꾸면 모든 게 가능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불가능한 꿈을 꾸고 싶어요."


그는 지금도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또 다른 꿈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수상소감으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좋은 연기자라기보다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연기자가 무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연기자라는 건 다른 인물을 설명해주는 역할이잖아요. 그런데 그 바탕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설명에 타당성이 없어질 거 같아요. 항상 웃기만 하고 이런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화낼 때 화내고, 건강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꿈이 생겼어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강하늘은 스타가 되는 빠른 길보다, 배우로 나아가는 길을 천천히 걸어 가고 있다. 단 것에 빨리 취할까,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다.

"'3, 4년 연기해야지'하고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저는 지금 훗날 제가 50대가 되었을 때, 무슨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급하게 가서 넘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천천히 등반하는 느낌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급하게 가기 시작하면 꼬이거든요. 욕심만 많아지고요. 사실 제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숨씩 돌리면서 천천히 가고 싶어요."

다시 <소녀괴담> 당시 인터뷰 얘기로 돌아갔다. 그때 그는 "예술이라는 답이 없는 행동 속에 자기 생각은 확고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예술관, 배우관, 가치관들을 정립시켰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1년 사이 많이도 달라진 환경 속에서 그는 "바라보는 저의 눈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다행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대본을 먼저 보고, 제 역할을 보거든요. 이번에도 제 역할보다 대본을 다 읽고 제 역할을 보더라고요. 아직까지는 다행이다 싶어요.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불가능한 꿈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은 대목이다.

▶강하늘 "'쎄시봉' 우리 아버지를 위한 작품" [인터뷰①] 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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