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드카펫'에서 주인공 정우 역을 맡은 윤계상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나는 에로 감독이다." 영화 '레드카펫'에서 윤계상이 맡은 캐릭터 정우의 시작이다. 정우는 에로영화를 찍으면서 박찬욱 감독의 오마주를 위해 원테이크(한 장면을 카메라를 끄지 않고 담아내는 예술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기법)로 할 것을 고집부린다. 에로영화에 박찬욱 감독의 오마주라니, 말도 안 된다. 정말 '싸보이지만 괜찮아'가 될까? 윤계상과 영화 '레드카펫'은 그게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 '레드카펫'은 에로영화를 찍던 이들이 자신들이 꿈꿔오던 '영화'를 찍는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았다. 결국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윤계상은 "'레드카펫'에 함께한 사람들이 정점에 서 있는 배우들이 아닌 것 같아요. 그 과정에 있는 배우들이라 의욕도 넘치고 열정도 크고, 서로 시기하지 않고 팀을 이룬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회상했다. '영화'를 만들어내는 에로 영화팀 '꼴'의 멤버 조감독 오정세, 촬영감독 조달환, 막내 황찬성 등이 함께 얘기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고. 그리고 그 대화는 영화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레드카펫'은 박범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박범수 감독은 에로 감독 출신이다. '레드카펫'에 나오는 수많은 주옥(?)같은 에로영화 타이틀들은 실제 그의 작품이라고. 그에게 윤계상은 에로영화 찍을 때의 에피소드도 많이 들었다. 에로 배우들의 출연료는 얼마인지, 노출시킬 때 아무렇지 않은지, 에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실제로 감정이 생기면 카메라 앵글을 보는 게 연기로 느껴지지 않아 민망(?)하다는 얘기까지, 사소한 대화들을 나누면서 윤계상은 정우가 되어갔다.

영화 '레드카펫' 스틸컷


'레드카펫'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박범수 감독과 그를 연기한 윤계상 사이에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실제로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레드카펫'의 시사회 때 무대 인사를 앞두고 복도에서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정우가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감독이 '내가 너를 통해서 지금 이 관객들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이러면서 뭉클하다고 하더라고요. '너 얘긴데 뭘'이라고 대답했지만 '지금 이 사람이 진짜 좋겠구나'라고 순간 느껴지더라고요."

'레드카펫'에서는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에로영화를 찍던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영화에 누구 하나 관심 갖는 이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작은 봉고차에 비좁게 앉아서 '꿈'을 향해 달린다. 특히 '레드카펫'에서 불순한 의도긴 했지만 한 명이 손을 차 밖으로 내밀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차 밖으로 손을 내밀며 마치 차에 날개가 달려 날아가는 것 같이 연출된 장면은 윤계상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은 컷.

"좋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같은 차에 탄 사람들의 꿈이 다 같은 지점에 있다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같이 바라봐주는 거죠. 응원해주고.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이렇게 직접 말하면 좋으면서도 오글거리기도 하는데,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이 좀 다른 장면 같아요. 말보다 행동으로 할 때 크게 와 닿는 것 같은데 그걸 표현한 것 같아서 너무 좋더라고요."


'레드카펫'의 꿈을 이룬 정우처럼 윤계상은 인터뷰 현장에서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찾아본 이전에 했던 인터뷰의 제목에 꼭 들어가는 단어가 '행복'이었다. 이 말에 윤계상은 "행복 전도사가 됐네요"하며 웃음지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10년간 연기생활을 하면서 8년 차쯤 됐을 때 몸이 아프면서 사실 너무 힘들었거든요. 허리가 아프면서 1년 정도를 쉬었어요. 그런데 후회가 밀려오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 몸을 버리면서까지 난 얻은 게 뭘까'하는 자기 질문에 빠지다 보니 사람이 피폐해지더라고요. 끝도 없이 비관적이게 되고. 그런데 그때 저를 진짜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까 내가 살아가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사랑가는 이유가 이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2012년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을 찍을 때 윤계상은 허리디스크로 쓰러졌었다. 신경 주사를 계속 맞으면서도 4개월 정도를 매일같이 밤샘 촬영을 이어갔다. 종영된 후 찾은 병원에서 담당의는 윤계상에게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오래되다 보니 연골 부분이 거의 없어 뼈끼리 붙은 상황이다, 다리가 움직이긴 해요?"라고 되물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실 당시에 다리도 움직이기 힘들어 서서 세수를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급하게 수술을 하고 3개월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윤계상은 자신을 왜 이렇게까지 만들었는지, 힘들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태우를 만났는데 태우는 20살 때 윤계상을 기억하는데 제가 좀 우울해 있으니까 '왜 이렇게 변했어? 미쳤어?' 이러더라고요. '내가 더 힘들어, 내가 애 아빤데. 난 잠도 못 잤는데 왜 이래 솔로가' 이러면서 말을 하는데 그게 너무 좋은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제가 했던 요리 프로에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시작이 되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 것 같아요."

지금 윤계상은 건강하다. 예전처럼 god(지오디) 무대에서 안무를 '딱, 딱' 맞추기는 어렵지만 "이제는 피곤해도 감사하다고 생각을 해요"라고 말한다. 윤계상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화 '레드카펫'의 끝에서 정우 역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꿈이었던 영화를 완성한다. 현재 '행복전도사'라며 웃었던 윤계상의 꿈은 뭘까? "저는 그냥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사는게 꿈이예요. 당연히 오는 미래지만, 미래를 너무 생각해서 꿈 속에 저를 가둬두고 싶지 않아요. 오늘을 충실히 살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이뤄지겠지?라고. 막연하게, 오늘을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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