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의 여월 역의 손예진 / 사진 : 더스타 현성준기자,star@chosun.com


손예진을 보면 아직도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산토리니의 파란색과 함께 떠오르던 청초한 그녀가 달라졌다.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직접 몰래카메라를 기획하는가 하면,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의 여두목으로 남성들을 호령하고 나섰다. 지난 시간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는 6일 개봉을 앞둔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에서 손예진은 바다를 제압한 해적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아 현란한 검술 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의리!'를 보여준다. 국내 영화 중 '해적' 캐릭터는 처음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뎁이 홀로 해적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 해적, 그것도 조선 시대의 그 여월는 생소했다.

"처음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가 다 만들어간다는 매력이 있죠.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컨셉을 잡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멘붕이 오는 거예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생각하다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가 오버하는 것처럼 나올 것 같고, 캐릭터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반면에 '해적' 영화가 잘 나오고, 여자 해적이 시초이기 때문에 더 욕심도 나고, 걱정도 되고요."

'여월'을 만들어가는 손예진의 욕심은 남달랐다. 국내 최초의 여자 해적 '여월'의 스타일링에 자신의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동원했다. 인터넷과 잡지를 통한 자료조사에도 직접 참여했다. 여자 해적하면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나오는 페넬로페 크루즈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차별화가 된 '여월'을 만들고자 했다. 손예진은 "여월의 대사로 성격을 아는 것보다 보이는 한 장면으로 캐릭터가 파악되어야 했기 때문에 50% 이상 비주얼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라며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이유를 밝혔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비주얼이 50% 였다고해도 나머지 50%는 손예진이 직접 만들어가야 했다. 코믹을 담당하는 김남길을 필두로 한 산적단에 무게를 맞추기 위해서는 진지함과 의리로 뭉친 해적단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자들을 호령하며, 카리스마 눈빛을 강렬하게 내뿜어야했고, 사극이라는 대사 톤도 어우러져야 했다. 손예진에게 현장은 '마냥 행복했어요'라고 하기에는 걱정과 고민이 많은 곳이었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서 손예진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전달되는 코믹, 바다를 내두르는 날렵한 액션, 강렬한 카리스마 눈빛을 새롭게 선보인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속 청순한 그녀의 도전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간 쌓아온 손예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 '공범'에서는 아빠를 의심하는 딸을 보여줘야 했고 '타워', '백야행', '무방비도시' 등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여줬다.

"안 해본 걸 하게 되더라고요. 멜로를 한 다음에 바로 멜로를 하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보는 사람도 지겹고, 하는 사람도 지겹고. 하지만 '이번에 멜로했으니 다음엔 미스테리하자'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냥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캐릭터가 새롭고 끌리는 걸 고르다 보면 장르가 바뀌는 것 같아요. '공범'같이 캐릭터 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감정이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하면 또 밝고 경쾌한 영화를 찍고 싶고, 그렇게요."

최근 도전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한 출연도 손예진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 역시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나의 행보"라고 표현할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4년 뒤 월드컵이 열렸을 때 그 나라까지 찾아가서 우리나라 축구팀을 응원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긴 어려울 것 같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재미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신선한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과감히 결정했다.

"사람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저는 걱정도 많고 어릴 때는 더 예민했고, 완벽주의자 같은 성향이 있어요. 지금도 그런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예전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려놓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무언가를 주저하고 고민하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없어진 것 같아요. '무한도전'도 예전이라면 무서워서라도 못 나가죠. 하지만 배우로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직업이 연예인인 여배우로서 그냥 같이 응원하고 축구를 보면서 열광하고 싶었어요."


데뷔 때를 돌이켜보면 힘들었다. 손예진은 드라마 '맛있는 결혼'에서 주연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당시 데뷔시켜준 박성수 감독님과는 지금은 웃으면서 "예전에 그랬잖아요" 얘기하지만, 그때는 웃고 싶은데 웃을 수도 없었고 심장은 콩닥거리고 마냥 감독님이 무섭고, 싫고 원망스러웠다. 그 후 영화 '취화선'을 찍었다. 영화 속에서는 5분가량 나오는 10회차 촬영 분량이었지만 카메라 옆에서 지켜보시는 임권택 감독님과 최민식 선배님 사이에서 머리에 못을 쿵쿵 박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현장 가기가 무서웠어요. 대중들이 여전히 '클래식'을 너무 사랑해주시고 제가 지금 봐도 너무 아련한데 그때는 곽재용 감독님께 '제가 나이가 조금 더 있으면 잘할 것 같은데'하고 힘들다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너가 지금 이 나이니까 나오는 게 있어, 나이가 들면 지금의 연기를 할 수 없을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 보면 그때의 어색한듯한 풋풋함이 지금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손예진은 "잘 버텨왔다"고 말했다. 3일 내내 밤샘촬영을 해도 한마디도 할 수 없이 치열했던 하루하루를 그는 잘 이겨내 왔다. 배우라는 직업에 자신의 한 마디가 작품에 누가 될까 데뷔하고 3년은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혼자 이를 악물고 연기만 생각하고 버텨온 날에 그는 "어떻게 보면 대견한 것 같아요, 비뚤어지지 않고"라며 스스로를 토닥토닥 다독였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은 드라마 '상어'를 마치고 배우로서도,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간에 선택한 작품이었다. 연기 열정이 식은 적도, 진지하게 쉬고 싶었던 적도 없었던 터라 덜컥 겁까지 났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해적'이 또 다른 제2의 포인트"라고 표현하며 "다음 작품을 고민하게 해준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매 캐릭터를 하면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라는 게 진짜 어려운데 너무 욕심나죠. 그런 얘기들을 가끔 해주실 때 진짜 책임감이 무거우면서도 너무 기분 좋은 얘기인 것 같아요. 저 배우가 하면, 그래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라는 거?"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작품과 장르, 캐릭터를 떠나서 손예진은 여전히 '무한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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