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바다로 간 산적' 김남길 / 사진 : 더스타 현성준기자,star@chosun.com


아직도 김남길이라는 비담의 모습이 서린다면 '해적:바다로 간 산적'을 보라고 추천한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이하 '해적')의 오는 8월 6일 개봉을 앞두고 김남길을 만났다. 익숙한 수염을 깔끔히 자른 작은 변화이지만 '선덕여왕' 비담, '나쁜 남자' 건욱등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왠지 모를 김남길의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실상 '해적'에서 김남길은 달랐다. 어두운 표정과 짙게 깔린 목소리를 내려놓고 호탕한 웃음과 약간은 수다스러운 어조를 보여준다. 하지만 김남길은 "재밌다, 신선하다? 그런 반응들이 더 의외였어요"라고 답한다. 실제 현장에서 그의 모습은 '해적'의 장사정에 가깝다고. 심각한 상황 속 식사 장면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잖아"라는 투정으로 한 템포 스태프들에게 쉼을 주는 배우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장사정이 '나랑 똑같다' 싶은 것보다는 말투나 행동이 '나랑 비슷한데?' 혹은 '나 같았어도 이렇게 행동했을 텐데' 이런 부분이 있었어요. 그걸 감독님께서 편하게 제 스타일대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주셨죠."

'해적' 속에서 김남길이 맡은 '장사정'은 군사들이 고려를 등지고 조선 개국을 도모하려 하자 이에 반하며 산으로 들어가 산적단의 두목이 되는 인물. 여월(손예진)을 만났을 때 여자에게 질 수 없어 고개를 뻣뻣이 들며 허세를 부리는 모습, 싸움을 코앞에 둔 두 배 사이에 끼었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허허허' 너스레 떠는 모습, 고려에 등 돌리는 장군에게 "나라 버리고 한 자리씩 차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돌직구를 던지는 일방통행 단순 무식의 모습들은 모두 실제 김남길과 닮아있다.

특히 장사정이 여월과 손이 묶인 채 동굴에서 잠을 청할 때 자연스레 바지 속으로 손이 내려가는 부분은 김남길의 너스레의 끝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언급하자 김남길은 "여자들은 자면서 안 긁어요?"라며 "나만 그러는구나"라고 말하고 크게 웃는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남길의 개그코드는 사실 산적단 무리와 함께 완성된다. 촬영 시작 소리가 들리면 너나 할 것 없이 개그 욕심을 보였다고. 이미 정평이 난 유해진의 연기도 탁월했지만, 그는 배우 김원해의 애드립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어를 잡고 그를 건지려 할 때 김원해가 작은 뜰채를 들고 준비 자세를 취하는 장면은 김남길이 '해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 "'야 이걸로 뜰 수 있겠어?'가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이 '음 준비됐냐'라고 하거든요. (김)원해 형이 뜰채를 들고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었거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함께 출연한 손예진까지도 산적패의 팀워크를 부러워했다. 그만큼 산적들은 똘똘 뭉쳤다. 그리고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에서 누차 말했던 음담패설은 입담꾼들을 모아놓은 집단에서 빠질 수 없었다. 김남길이 말을 타는 장면을 찍다 낙마해 허리를 다쳐 촬영장 분위기가 서늘해졌을 때도 형들은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장가는 가겠냐"라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짓궂은 농담으로 김남길의 옆을 지켰다.

그리고 김남길은 몸이 아닌 마음이 지쳐있을 때도 곁에 선배들이 있었다며 고마움을 보였다. 그는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첫 복귀작 '상어'에서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오랜만에 현장에 돌아온 그는 연기에 힘이 들어갔고, 그 느낌은 강박증으로 이어졌으며, 배우라는 입장에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어'에서는 이를 표현하지 않았다. 주연배우는 출연배우들 중 선장이라는 생각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해적'을 촬영하면서도 고민이 이어졌어요. 편안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눈치가 보이고 힘이 덜 빠졌나 싶더라고요. 혼자 숙소에 있을 땐 '연기가 나랑 안 맞나?', '내가 아등바등 버텨왔나?' 생각도 들더라고요. 형들에게 자문하기 시작했고, 형들은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라는 얘기도 해줬어요. 형들이 많이 도와주면서 연기에 힘이 빠지고 본연의 제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많이 편해진 느낌이지만 지금도 슬럼프가 완전히 극복된 건 아니다. 하지만 김남길은 "이제 좀 재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영화 '무뢰한' 촬영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다.

"예전 같으면 쉬고 싶을 것 같아요. 너무 힘들다면서. 그런데 이제 연기에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도 그러세요. '다음 작품 또 안 해?' 그러면 제가 '좀 쉬고 싶다고~내가 촬영하다 쓰러지면 좋겠어?'라고 답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죽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김남길은 현장에서 힘을 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전에는 슬픈 연기 하면 '눈물'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슬픔을 드러내는 것에 덤덤함도 있을 수 있고, 분노도 있고, 현실 부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정답은 없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은 더 깊어지고 많아질 것 같다고.

처음 본 김남길의 말끔한 얼굴에 통쾌한 웃음 뒤로 꽤 많은 고민들이 스친다. '상어'를 택할 때 대중들이 알고 있는 익숙한 내 모습으로 가자며 수많은 '로맨틱'물의 제안들을 고사했던 김남길은 지금은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니까"라며 수염을 밀듯 무언가를 깨끗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스로 말한 "수염 안에 내 모습은 뭘까 하는 궁금증도 있고"라는 말처럼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오는 8월 6일에 관객을 만나는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은 그의 말에 의하면 "많은 모습을 보여줄 전초전"인 작품이다.

-[인터뷰②] 김남길 "나에게 손예진은…무서운 여동생"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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