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조정석 인터뷰 / 사진 : 올댓시네마 제공


납득이가 액션을 했다. 전작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로, '관상'에서 팽헌으로 보여준 특유의 입담을 감추고 '역린'에서 조정석은 젓가락과 검을 들고 말 그대로 몸을 썼다. 무대 위 뮤지컬 스타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명실상부 자신의 몫을 보여주는 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낯설지가 않다.

'역린'에서 그를 조선 시대의 살수인 을수로 만든 건 지난 2012년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그를 왕실 근위 중대장으로 만든 이재규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의 첫 영화 연출작에서 다시금 조정석의 다른 면을 꺼냈다. 이에 조정석은 이재규 감독이 자신의 다른 면을 봤기 때문에 을수를 맡긴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역린' 촬영하는데 한 번 이런 적이 있어요. 어떤 보조 촬영자분을 보시고 감독님께서 저한테 '저분 다른 거 해도 잘할 거 같지 않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거 아닐까요? 감독님은 저의 또 다른 면을 보신 게 아니라 조정석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감을 얘기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는 여러 이유보다 먼저 '역린'의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모든 인물이 마치 거미줄처럼 함께 얽히고설켜 있는 관계성이 흥미로웠고 '정유역변'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정조와 갑수, 갑수와 을수, 을수와 월혜 등의 관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된 '역린' 역시 그는 "완전히 만족해요"라고 평했다.

"'역린'을 세 번 봤어요. 처음 봤을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제가 연기를 어떻게 했을까만 보였죠. 그런데 두 번째는 좀 객관성을 가지게 되고 세 번째는 디테일이 보이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재미있었어요. 전 세 번째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역린' 조정석 을수 캐릭터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역린'에 대한 만족감은 높았지만 을수가 되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위험한 장면에는 대역 무술팀이 해줬지만 조정석은 거의 대역없이 직접 소화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을수가 검을 풀어 한 손에 척 잡아쥐는 장면도 CG나 다른 효과 없이 스스로 해냈다고 "이게 자랑이야?"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첫 액션 연기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다. 밑에 깔린 몇 개의 매트에 의존해 3~4m를 자유낙하로 떨어져야 하는 연기를 해야 할 땐 '아 정말 포기하고 싶다, 정말 도망가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다고.

조정석은 을수와 정조(현빈)의 싸움에서 카메라 앵글이 가까이 올 땐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진검을 사용해야 했고 현빈이 휘두르는 진검을 어깨에 받친 나무 판에 의존한 채 위협적인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단 한 장면, 을수가 존현각(정조의 거처)에서 카메라 가까이 뛰어가야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속도를 이기지 못해 지미집(카메라를 단 크레인 같은 구조물)에 부딪혀 이마에 큰 혹이 났던 것을 제외하면 큰 부상 없이 촬영했다고 말했다.

액션 연기를 위해 조정석은 숙소였던 광주에서 눈뜨면 보양식을 챙겨 먹었다고 회상했다. "오리탕, 장어, 그리고 집에 있는 홍삼을 다 가져와서 먹고 그랬어요. 살이 빠지기보다는 유지가 됐던 것 같아요. 잘 먹고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니까 유지가 됐던 것 같아요."

조선 최고의 살수이자 '역린'속 '액션'의 주인공은 을수인데 정조(현빈)의 등근육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에 서운한 마음은 없었냐 묻자 "욕심이 전~혀 없었어요"라며 "시나리오상에 노출이 있어야 한다고 적혀있었으면 해야죠. 저도 몸을 열심히 만들고 했겠지만 그런 게 없었으니까, 도리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라고 답한다. 자신의 부각보다는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앞선다. "그게 바로 보여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배우의 몫 아닐까요?"


조정석은 '역린'에서 정조가 눈길을 줬던 여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로맨스가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는 조정석에게 실제로 연애는 하고 싶지 않냐 묻자 "연애요?"라고 되물으며 "요즘엔 별로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작년엔 좀 심했는데. 그런 날이 오겠죠, 아주 불타는 그런"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영화 홍보를 빌어 예능 출연 욕심은 없냐는 물음에도 그는 "예능을 잘할 자신도 없고 열심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건축학개론'부터 '왓츠 업', '더킹 투하츠', '최고다 이순신', '관상', '역린', 개봉을 앞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오는 6월 27일 공개될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까지 그는 쉼 없이 달려왔다. 일이 아닌 휴식에 대한 계획을 묻자 그는 "휴가에 대한 계획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뮤지컬 연습도 해야 하니까요. 9월 14일까지 뮤지컬 공연을 하거든요.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았기 때문에 오로지 저는 이 뮤지컬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이 굴뚝같이 자리하고 있어요"라고 연기에 대한 욕심을 보였다.

무대가 아닌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조정석은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그대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납득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세잖아요. 그리고 조정석이라는 얼굴은 그 당시 처음 보고, 시너지가 발생한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조정석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자신을 '잡식성'이라고 밝힌 것처럼 국적, 시대, 무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조정석은 주저 없이 캐릭터들의 옷을 입었다. 각기 다른 캐릭터 속에서 그는 조정석이 아닌 납득이였고, 은시경이었고, 준호였고, 팽헌이었고, 을수였다.

"좋아하는 감독님, 작가님 이런 얘기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를 찾아주시고 불러주시는 것조차 감사한 일 아닌가요?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좀 잡식성이죠. 스릴러물도 너무너무 좋아하고, 액션도 좋아하고 말랑말랑한 멜로도 너무 좋아요. 또 뮤지컬을 해서 그런지 '레미제라블' 처럼 뮤지컬 영화도 관심이 많고요. 장르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수많은 계단을 지나온 조정석, 앞으로 보여질 잡식성의 조정석이 기대되는 이유, 납득이 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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