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그녀' 심은경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필자는 엄마 옆에서 영화 '수상한 그녀'를 봤다. 영화 보는데 크게 취미가 없으신 엄마는 영화가 끝난 후 첫 질문을 던지셨다. "어머, 쟤는 누구니?" 영화 제목 그대로 '수상한 그녀, 심은경'을 만났다. 만난 후 소감? 정말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수상한 그녀'는 스무살 꽃처녀 오두리(심은경 분)가 된 칠순 할매 오말순(나문희 분)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의 코드로 담아냈다. 오두리는 극 중 "하여튼 사내놈들은 아랫도리가 문제여", "남자는 그저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믄"라는 말을 날 것으로 뱉어내며 손주 반지하(B1A4 진영)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등 오말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제 스물한 살이 된 심은경은 수줍은 대사도, 익숙지 않은 스킨쉽 연기도 아닌 나문희의 독보적인 웃음소리를 똑같이 표현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여러 버전으로 촬영을 했는데 결국에는 NG 컷으로 쓰셨더라고요. 또 편집을 잘 해놓으시니까 더 우스꽝스럽게 잘 나타낸 것도 같고요."

영화 내내 나문희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냈다 칭찬하자 오히려 심은경은 "쑥쓰러워용"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극 중 오두리처럼 털털하고 수다스러울 것 같은 그녀의 이미지가 깨졌다. 심은경은 "제가 낯을 좀 많이 가려요, 그래서 사람들이랑 전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더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라며 "내성적인 성격도 있지만 친해지면 밝은 모습도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트위터에서는 더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라고 덧붙인다.


사람들의 연이은 호평에 정작 본인은 자신을 더 침착하고 겸손히 내려놓으려 노력한다는 심은경은 전작 '써니'의 성공 이후 돌연 유학길을 택했다. 아역배우로 성장하면서 두 다리로 외딴 도시에서 혼자 선다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첫 유학길에는 엄마도 동행하지 않고 홀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름대로의 사춘기도 겪고 방황도 하면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뉴욕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공원이 있었어요. '브라이언 파크(Bryant Park)'라고 6에비뉴 42번가 쪽에 있었어요. 학교 끝나고 지하철 타고 가서 그 공원에 햇살 비추는 게 너무 좋아서 거기서 음악 들으면서 쉬고 오고, 쉬다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누가 봐도 소소한 순간이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유학을 간 곳에서 크게 뭔가를 이루고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심은경은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알았다. '수상한 그녀'에서 이진욱이 아날로그적인 오두리의 모습에 반하듯 심은경은 갓 21살 꽃처녀에겐 살짝 낯 선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드뷔시, 라벨 같은 클래식 음악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 나쓰메소세키의 작가를 통해서도 그 느낌은 살아있다.

"연기라는 것이 인간의 내면이나 고뇌를 표현하는 직업인데 그런 걸 잘 알 수있는 것들이 고전문학과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듣고 읽으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들이 저도 모르게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와 닿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고전으로 인해 제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연기를 함에 있어서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인 심은경은 유난히 오두리와 닮아있고 그래서 우리네들의 엄마 오말순과 연결되어 있다. 필자의 엄마가 '수상한 그녀'에서 꼽은 명장면은 '하얀 나비'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오두리로 살아온 심은경 역시 '수상한 그녀' 속 등장하는 수많은 곡을 제치고 '하얀 나비'를 추천곡으로 택했다. 심은경은 이에 "제가 가장 많이 감정이 올라왔던 장면이었고 편곡 자체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련하게 어우러져 흘러나오는 노래라 관객분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나름의 이유를 댄다.

자식으로서 필자가 '수상한 그녀'에서 택한 장면은 아들과 오두리와의 대화 장면이었다. 오말순의 인생은 오로지 아들 한 명을 키워낸 시간이었다. 이는 아들 역을 맡은 성동일과 눈물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심은경은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한다 걱정말아라'라는 어머니의 강인함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저도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읽었을 때부터 너무 많이 울었던 장면이라서요. 오히려 너무 많이 울어서 NG가 났던 장면이에요"라고 답한다.

오두리로서의 한이 담긴 세월의 '하얀 나비'가 있다면, 딸로서 눈물로 읽어낸 성동일과의 대화 장면이 남을 터. "사실 이 영화는 저희 엄마를 위한 영화예요. 촬영할 때부터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촬영을 했고, 엄마에게 이 영화를 바치는 특별한 의미의 영화이기도 해서 저희 엄마의 모습이 저를 통해 조금이나마 비쳤으리라고 생각이 들어요."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 촬영을 마지막으로 촬영장에 엄마와 함께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배우다라는 열린 생각으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심은경은 "트랜디한 20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나, 심은경이 정말 이렇게 진지했었나? 할 정도의 무거운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20대의 출발점에선 심은경은 그 시절 동안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싶은 꿈을 꾸고 있다. 그를 위해 대학 진학을 해 영화를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매료시켜버린 훌쩍 성숙해져버린 심은경이 '수상한 그녀'인 이유다.

한편, 심은경이 칠순할매 오말순(나문희 분)으로 변신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해줄 영화 '수상한 그녀'는 지난 22일 개봉해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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