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무엑터스 제공

젠틀해 보이지만 어딘가 친근한 분위기, 그리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위트 있는 말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정명석처럼, 강기영도 그런 사람이었다.

강기영은 극 중 대형로펌의 시니어 변호사이면서도 늘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주는 이상적인 상사 '정명석' 변호사를 연기했다. 정명석은 극 초반엔 주인공 우영우(박은빈)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을 가지기도 했지만, 이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후배를 인정하고 동료로 받아들여주는 선배다. 덕분에 '서브아빠', '유니콘 상사'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데뷔 이래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품 종영 전 강기영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강기영은 특유의 너스레 있는 말투와 유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냈다.

Q. 작품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우영우' 방영 후 인지도 차이도 느낄 것 같다.

우선 사인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식당 같은데 가면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알아봐 주신다. 체감이 많이 되고 있다.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다. 가족들도, 특히 장모님이 (제가 잘 된 것을) 너무 좋아해 주시면서도 밖에서는 언급을 조심하는 것 같더라. 제 신비감을 좀 지켜주고 계신 느낌이다.

Q.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정명석 역할에 자신이 캐스팅된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유인식 감독은 어떤 점 때문에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하던가.

일단 감독님하고 장난을 엄청 많이 치는 사이다. 제가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에 리스트업 선상에 있을 때, 마치 제가 캐스팅된 것처럼 가족들에게 꽃게를 샀다. 최종 미팅 때 감독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꽃게 사셨으니까 캐스팅을 하겠다'고 하시더라.(웃음) 감독님께서 그렇게 위트 있게 캐스팅을 결정해 주셨다.

작가님께도 왜 저를 명석이로 꼽으셨냐고 여쭤봤는데, '미추리'를 정말 재밌게 봤다고 하셨다. 일단 명석이가 '미추리' 속 제 모습이랑 너무 다른데도, '미추리' 팬이서서 제가 뭘 해도 잘 할 것 같았다고 하셨다. 작가님 입장에서도 실험적이셨을 텐데 캐스팅해 주셔서 감사하다.(웃음)

Q. 극 중 정명석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조력자로서 큰 활약을 한다. 캐릭터의 어떤 매력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일단 정명석은 실수를 해도 계속 기회를 주는 상사니까, 그런 모습이 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저에게도 저에게 당근을 주는 선배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게 원동력이 돼서 그런 모습의 상사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Q. 극 초반 정명석은 우영우의 장애에 편견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물론 그 편견이 바로 해소가 됐지만, 이후에도 정명석의 서사 속에서 변주를 그려내야 했는데, 캐릭터 소화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사실 편견에 대한 부분에서는 금방 무너져서 마음이 편했다. 어쨌든 1부부터 영우를 인정하기 시작했으니까 좋았고, 명석이에게도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존재가 우영우 변호사였던 것 같다.

처음 명석이를 연기할 때는 FM 변호사라는 이미지에 너무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초반에는 정명석과 강기영을 잘 버무리지 못했다. 연기 고수들이 캐스팅되어 있어서 그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깨달아갔다. '나도 재밌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왜 이렇게 갇혀서 연기하지?'라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 배우들과 케미가 잘 맞아서 헤쳐나간 부분도 있다.

Q. 변호사 역할이 처음이지 않나. 법률 용어나 여러 부분에서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도 있었을 것 같다.

용어나 그런 걸 준비한다기보다는 그런 말을 편하게 뱉을 수 있도록 몸을 많이 준비한 것 같다. 현대인의 고질병이라는 라운드 숄더가 딕션과 발성에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표현하기 위해 기본기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악기라도 하면 유연한 악기를 써야 했다. 그래서 약해진 근육 운동도 많이 하면서 준비했다.

Q. 박은빈, 강태오, 하윤경, 주종혁 배우와는 '한바다즈'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특히 연기 대선배인 박은빈과의 현장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한바디 친구들이 다 정말 웃기다. 짝짜꿍이 정말 잘 맞았고 카메라가 꺼져도 쉴 틈 없이 떠들었다. 제가 윤경 씨를 '하윤기영'이라고 부른다. 여자 강기영이라는 뜻이다. 너무 재밌는 친구다. 종혁이는 작품 속에서는 권모술수로 통하지만 실제로는 여리고, 저랑 비슷한 면이 있다. 저는 연극부터 시작했지만, 그 친구는 독립 영화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친구라 애정이 갔다. 태오는 막상 많이는 못 만났는데, 처음에는 낯을 좀 가리는 것 같았다. 알고 보면 허당미에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친구다.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도 한다.

은빈이는 배울 점이 너무 많았다. 사실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현장을 행복하게 아우르는 그 힘이 있는 면 때문에 조정석 배우를 정말 좋아하는데, 은빈이에게서 그런 에너지를 받았다. 어린데도 현장을 늘 지켜보고 있다. 특유의 개그감도 있고 그걸 연기에도 잘 녹여서 놀람의 연속이었다.

굉장히 나무 말고 숲을 보는 친구다. 물리적인 시간도 타이트했는데, 되게 별것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서도 준비를 해오더라. 배울 점이 많아서 훌륭한 선배님이라고 생각했다.

Q. 평소 애드리브를 많이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상 깊었던 애드리브나 현장 에피소드가 있나.

숨겨진 애드리브가 있었다. 한밤중에 영우에게 전화를 받고 '새들도 아가양도' 하는 부분인데, 그때 너무 비방용으로 애드리브를 친 게 있었다.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은 너무 좋아하셨는데 방송에 나갈 수 없는 말이라 소장용으로만 가지고 계신 것 같다. 그 순간에는 명석이가 아니라 기영이가 나온 것 같았다.(웃음)

Q. 완벽한 수트핏에 안경으로 지적인 이미지를 완성했다. 스타일링 면에서 신경 쓴 부분도 있나.

제가 일전에 tvN에서 '런'이라는 마라톤 프로그램을 했었다. 그때 달리기에 관심이 생겼는데 달리다 보니 군살이 빠지더라. 그 후에 슈트를 입으니까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 있었다. 스트레칭도 많이 해서 몸을 피려고 하다 보니 핏이 잘 산 것 같다. 달리기를 하면서 체중 변화는 없는데 확실히 군살이 잡힌다. 가장 효율적이게 몸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 같다.

어쨌든 대형 로펌 변호사 역할이라 슈트는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안경은 개인적으로는 안 쓰고 싶었는데 어쨌든 스마트한 느낌이 안경을 꼈을 때 더 나니까 감독님께서 써보라고 추천을 해주셨다. 실제로는 라식을 해서 시력이 양안 1.5로 아주 잘 보인다.(웃음)

Q. 배우에게도 정명석 같은 선배가 있었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사는 실패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다. 어쨌든 틀려야지 머릿속에 기억이 남지 않나. 실수까지도 허용해 줄 수 있는 상사가 그 사람의 가능성을 키워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 자체도 그런 것 같다. 계속 실패했던 것들이 자양분이 돼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예전에 공연했을 때는 연기를 즐겨봤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긴장하고 심장이 떨려서 주체를 못 하곤 했었다. 그때 박훈 형과 같이 연기했었는데, 형이 '너 딕션도 좋고 전달력도 좋다. 다 들려. 잘 하고 있어'하고 딱 가셨는데 그게 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났다. 그런 당근들이 저를 더 점프업 시켜준 것 같다. 물론 채찍만 주는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게 채찍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워낙 철이 없었다. 다른 성향의 선배들이 다 계셔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스스로는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연기를 막 시작한 어린 친구들을 보면 저 같은 실수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조언을 하곤 하는데, 사실 스스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집요하게 제안을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듣더라.(웃음) 저도 그랬으니까. 이제는 바뀌었다. '그래 실패를 해봐라. 그러면 깨닫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겠니' 싶은 마음이다.

이번에 함께 한 친구들은 이미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어서 제가 해줄 말이 없었다. 자기 것을 가져갈 수 있는 친구들이었고, 윤경이나 종혁이도 다 독립영화 쪽에서도 활약을 많이 했던 친구라 연기적 조예가 뛰어났다. 오히려 제가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다.

Q. 벌써 데뷔한지 햇수로 14년이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 자신은 어떤 배우인 것 같나. 앞으로 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뭔가.

14년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즐길 준비가 된 것 같다. 연기를 즐겨보고 싶다. 그동안은 너무 긴장을 많이 했었다. 이제는 연기를 상대방과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감정 교류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동안 누아르적인 작품을 해본 적이 없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속 에피소드 안에서 악역을 해봤는데, 그걸 긴 호흡으로 해보면 얼마나 새로울까 싶은 생각도 있다. 여러 가지를 도전해 보고 싶다.

무엇보다 '우영우' 덕에 들어오는 작품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배우로서 숙명이고 제 역할이니까 다양한 모습으로 신선하게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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