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 화상인터뷰 / 사진: 애플tv+, '파친코' 예고 영상 캡처

이민호가 '로코킹' 타이틀을 벗었다. 지난주 베일을 벗은 애플 오리지널 '파친코' 공개와 동시다. 극 중 이민호는 일제강점기, 탁월한 수완을 가진 시장 중개업자 '한수'로 분했다. 한수는 극 초반 주인공 '선자'와 강렬한 사랑을 하는 인물로, 시대적 아픔을 가진 채 돈과 성공, 권력만을 좇은 인물이다.

작품 공개에 앞서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민호는 대작에 참여하는 부담감보다도 일제강점기 속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냈다는 자부심,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나서는 설렘을 드러냈다. 그간 보여준 '로코' 매력을 내려놓고, 입체적인 악인을 그려낸 이민호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해외 매체의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많은 국가의 기자님들이 좋다고 해주셔서 의심이 될 정도예요.(웃음) 너무 극찬만 있어서 좀 놀랐고요. 가장 좋았던 멘트는 '이건 꼭 봐야 하는 작품이다'라는 말이었어요.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이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해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 부분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Q. 첫 OTT 작품을 애플TV+로 선보이게 됐다. 기존 현장과 다른 점이 있었나.

촬영이 준비되고 진행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고, 세트나 규모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한국과 캐나다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세트가 캐나다에 있었거든요. 근데 한국보다 더 한국 같았어요. 정말 시대와 밀접하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지점이 있어서 그런 점에서 규모감을 느꼈죠.

Q. 극 중 한수는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제가 중점을 둔 부분은 '절대 선'으로 태어난 사람이 '절대 악'으로 살아가는, 극과 극에 있는 그런 모습을 좀 표현하고 싶었어요. 처음 스크립트를 봤을 때 공감이 많이 일었거든요. 나라면 그 시대에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면, 한수와 비슷한 맥락의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너무 처절했고,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밟기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한수에게 공감이 가기도 했고 애정이 갔죠.

Q. 영도에서의 한수는 사투리를 쓰지 않지만, 일본에서 아버지와 살던 시절에는 제주도 방언을 사용하더라. 방언 중에서도 생소한 제주도 말을 익히기 힘들었을 것 같다.

7부에서 제주도 방언이 나오는데, 코칭해 주셨던 현지 분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제주도 방언을 보존하는 데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잊혀가고 있는 말인데, 저도 작품을 공부하고 이해를 하다 보니까 그들만의 언어가 사라져 간다는 건 문화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언어적인 면을 더 신경 쓰면서 연기했죠.

여러모로 언어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의사소통을 넘어서 언어에 감정을 실어서 연기하는 게 정말 쉽지 않고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고요.

Q. 선자를 중심에 둔 한수와 이삭의 삼각관계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로맨스를 소화했나.

저 같은 경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로맨스나 멜로 정도로 표현되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한수라는 인물이 살면서 처음으로 뭔가를 원하는, 그게 바로 선자거든요. 그런 포인트에 집중했고, 뭔가를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을 때 오는 한수만의 방식에 집중했어요.

Q. '파친코'를 위해 13년 만에 오디션을 봤다고. 어떤 과정이 있었나.

오디션이라는 개념조차를 잊고 있을 정도로,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거든요. 정말 잊고 있다가 오디션을 봤는데, 단순히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을 넘어서 갖고 있는 가치관, 성향 이런 것들을 깊숙이 알아가고 캐릭터와 매칭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좋았고, 오랜만에 예전의 저를 생각나게끔 하는 그런 작업이어서 만족스러웠어요.

Q. 한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색을 지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문화적 표현에 있어서 고민한 지점이 있을까.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한수는 살아나기 위해서 고국의 색깔을 지워야 했고,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해야 했죠. 그가 다시 영도에 돌아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시작된 곳에 대한 애틋함, 그런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자를 보면서 그 시작점에 있던 나를 다시 발견하는 마음을 중점으로 뒀어요.

수 휴 작가도 부산에서 태어나서 3살에 미국에 갔다고 들었는데, 촬영하다가 부산 바다를 걷는 일이 있었어요. 그때 그녀가 '민호, 나 기분이 이상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지점인 것 같아요.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가'에 대한 마음이요.

Q. '파친코'로 프리미어 행사도 갖고, K콘텐츠에 대한 인기를 몸소 실감하고 있을 것 같다.

다양한 국가와 프레스 데이를 갖고 인터뷰를 했는데, K콘텐츠에 대한 인기를 정말 몸소 경험하고 있어요. 저도 배우의 꿈을 가졌을 때는 '한류스타가 될 거야' 그런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듯이, 그냥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가 대작이고 글로벌하기 때문에 했다기보다는 이야기가 가진 힘 자체, 우리가 표현해야 하는 진정성에 집중하면서 촬영했어요.

Q. 그간 출연작에서 로맨스 장인으로 통하며 '로코킹'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변신한 소감은 어떤가.

늘 로코라는 장르 속에서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작품을 선택한 적은 없어요. 연기 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제 그런 부분을 좋아해 주셔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이 이야기 속에 있는 인물에 공감이 되던가, 작품이 좋아서 선택을 하거든요.

이번에도 저에게는 이미지 변신, 도전이라는 생각은 아니에요. 그동안 뭔가 잘 짜인, 멋진 남자의 요소가 갖춰진 캐릭터를 해왔다면, 이번에는 어떤 것보다 비현실적이고 처절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끌렸던 거죠.

Q. '파친코'가 이민호의 연기 인생에 어떤 지점으로 남을까.

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오디션도 보고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작업을 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자유로웠던 현장이었거든요. 작품이 가진 의미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자유도라던가 개인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무게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연기 인생 10년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작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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