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픽터뷰] '내가 죽던 날' 이정은 "모를 때는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녀요"

  • 에디터 이우정
    • 기사

    입력 : 2020.11.14 15:00

    '내가 죽던 날' 이정은 인터뷰 /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내가 죽던 날' 이정은 인터뷰 /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연기 경력만 30년인 배테랑 배우 이정은이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다. 모르는 게 있을 때면 무작정 "보따리를 싸들고 나간다"고 말한 그는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는 역할을 맡았다. 이정은은 말로 다 할 수 없기에 더 절절한,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위로를 선사한다.

    '내가 죽던 날'은 외딴섬 절벽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녀와 소녀의 행적을 좇는 형사, 그리고 무언의 목격자 세 사람이 중심이 된 이야기다. 아무런 접점 없이 살던 세 사람이 감정적 연대감을 느끼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작품의 메세지 그 자체를 연기한 이정은을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픽터뷰] '내가 죽던 날' 이정은 "모를 때는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녀요"
    Q. '내가 죽던 날'은 후반까지 달려가는 호흡이 느리다. 어떤 매력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나.

    '기생충'을 하고 가장 바쁠 때 '내가 죽던 날'을 찍었어요. 다양한 층위의 드라마나 영화를 하고 있을 때 찍게 돼서 저는 색채를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술자리에 가면 얘기 안 하고 술만 먹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타입이에요. 비록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커다란 감정 속에 있는 시간, 관객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땠나. 순천댁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저는 '어둡다' 이런 거 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목격자로 있으니 감독님께 "더 스릴 있게 가자"고 한 적도 있어요. 사실은 형사물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휴먼드라마라서 감정이 흐르는 타이밍을 보는 식으로 정리했어요. 어찌 보면 저는 잔 재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기도 했고요. 그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것들이 적절히 조화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이 역할을 잘 풀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가진 손바닥의 굳은살과 이 사람에 세월로 감당한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아쉽기도 했어요. 해안가 지방에 가보면 어머니들의 피부에서 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걸 더 분장으로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픽터뷰] '내가 죽던 날' 이정은 "모를 때는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녀요"
    Q. 작품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스토리다. 관객에게 어떤 힐링을 주고 싶었나.

    '기생충'은 면이 날카로운 작품이었죠. 저도 글 속에서, 삶 속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선택을 종용받는 데 자기감정을 모를 때가 있잖아요. 공감 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제가 십 년 키우던 강아지가 없어지고, 그때 애인하고 헤어졌어요. 그때 제가 웃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내가 어떤 심정인지 모르더라고요. 택시가 안 잡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한 언니가 '너 왜 여기 서 있어'라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줬는데 갑자기 막 무너져 내렸어요. 자기감정을 자기가 모를 때 누군가 손을 딱 뻗으면 자기가 무너져 있었다는 게 인식이 되죠.
    [픽터뷰] '내가 죽던 날' 이정은 "모를 때는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녀요"
    Q. 말을 못 하는 순천댁 역을 맡았다. 대화 없이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순천댁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는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사실은 뮤지컬 '빨래'라는 작품을 할 때 사지를 못 쓰는 딸을 키우는 노모 역을 했었어요. 제가 그때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들 하루의 고단한 노동 일상에 대해 알려고 했죠. 여기서는 그 대상이 조카예요. 내가 만약에 우리 오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 조카만 남았을 때, 그 조카가 사고로 누워있으면 누가 감싸 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밖에 없더라고요. 공감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그걸 부여받았다면 남은 인생은 거기에 써야 하는 것 같아요.

    말을 못 하니까 시골 어머니들 글씨체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마침 그런 시집이 있어서 원본을 구해서 비교해보니, 시골에서 생활을 하고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의 공통적인 필체가 있더라고요. 제가 오른손으로 쓰니까 너무 예쁘고, 왼손으로 쓰면 너무 터무니없어서 엄청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왼손 글씨가 (시골 어머님들 글씨와) 비슷해져서 필체를 만들었어요. 저는 사실 '순천댁'을 하면서 나 말고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은 배우가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더 평범하고 그런 배우가 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순천댁의 성대가 농약을 마신 거로 나와요. 어떤 기관을 다쳤느냐에 따라 소리의 색이 다르더라고요. 순천댁의 경우에는 농약을 먹고 목이 말라붙은 소리가 나는 걸 생각했어요. 그냥 해보니 목성이 더 잘 들리는 질감으로 나와서 후반 작업에서 더 깎아내고 낯선 목소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가지를 실험했어요. 녹음실에서 연기도 하고 소리의 질감을 바꿔내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감독님께도 감사해요. 끝까지 놓지 않아 주셨거든요. 저도 계속 목소리를 내다보면 그만하고 싶죠. 그만하고 싶은데 (감독님이) 안 내보내 주시더라고요. 조금만 더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게 집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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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옥자' 목소리 연기도 그렇고, 연극 '빨래' 때도 연구를 많이 했다고 했다. 한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방대한 취재를 하며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은데 성격 탓인가.

    제가 별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범죄물 중에 형사가 범인을 찾을 때 범인이 시체가 놓였던 장소에 가서 누워있는 거 있잖아요. 그 형사도 근거가 없는 거예요. 비빌 언덕을 하나씩 찾아가는 거죠. 저는 천재도 아니고, 모를 때는 보따리를 싸 들고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학습하는 능력이 좋은 건 아니라 돼지 소리를 찾아다닐 때는 봉준호 감독님이 '감정이 중요한 거지,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제가 좀 둔해서 그런지 벽에 부딪힐 때도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해야 할 때도 있으니 상상력이 높은 배우들이 부럽고 그런 리듬을 가진 배우들이 부럽지만, 저에게는 그런 게 없어서 많이 탐문하고 취재해요. 그러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편이에요. 어찌 보면 저를 안정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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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김혜수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김혜수 씨는 너무 배우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풍모가 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정우성 씨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데, 동년배라 더 묘한 기분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우리처럼) 밥을 안 먹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안 하시는 건 아니니까 신기하더라고요. 혜수 씨의 솔직한 부분이 좋아요. 저는 보수적인 한국 아줌마 스타일이라 좋아도 좋은 척을 잘 안 하는데, 혜수 씨는 좋다는 표현이 왕성하셔서 정말 멋진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Q. 김혜수 배우가 현장에서 '경이로운 정은씨'라고 부른다던데.

    '경이로운 정은씨'라는 말을 들으면 좀 창피해요. 혜수 씨가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있어요. 현장을 풀어지게 해요. 다른 현장에서도 들었던 얘긴데, 혜수 씨가 있으면 아우라가 형성되면서 '우리 함께' 이런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어떤 기둥이 딱 서 있는 느낌이고, 주변에서 그런 기운을 받아요. 제가 스태프 출신이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스태프들을 대하는 느낌을 느끼는데, 혜수 씨처럼 작업을 오래 해온 사람들에 대한 연륜에서 나오는 점들을 느끼게 돼요. 스태프들에게 고생했다고 하는 순간들을 많이 목격했죠.

    실제로 현장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분들을 많이 추천해주세요. 저는 나 혼자 살아가기 바쁜데, 혜수 씨는 작품을 넘나드는데 필요한 배우들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일궈내는 농사꾼 기질이 있어요. 서포팅하고 여유가 있거든요. 그냥 떠 있는 스타가 아니고, 영화라는 큰 맥락 안에서 뒤의 작품까지 생각해주는 배우니까 진짜 스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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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김혜수에게 좋은 영향력을 받았다고 했다. 스스로는 배우로서 어떤 영향력을 전하고 싶은가.

    제가 연극배우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무대에서의 경험들이 저를 만들었으니까(보답하고 싶어요). 연극 배우분들이나 예술계 쪽의 척박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의료에 대한 지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경력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 꿈을 잃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연달아 출연작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배우로서의 부담감은 없나.

    저 주말드라마 때 완전 시달렸어요. 평범한 역을 잘 못 할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우리 매니저는 다 알거예요. 제가 연기 못하나 싶었어요. 더 잘하려고 연습하려고 했어요. 포기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내가 어떤 반성을 가지고 가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거죠. 제가 정신력이 튼튼해서 충격이 크진 않지만, 잘 방어할 수 있어요. 계속 잘하는 역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응원이 필요해요. 제가 잘될 때 말고 못 할 때도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일본은 무대 배우가 되면 팬이 십 년, 이십 년 길게 간다더라고요. 길게 보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술 먹고 놀고, 대사도 안 해오는 배우가 아니니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더 사랑받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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