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원 인터뷰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강력한 한 방’일 줄은 몰랐다. 배우 김래원은 SBS 드라마 ‘펀치’를 통해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박정환 검사의 생애 마지막 6개월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그가 만든 박정환은 김래원이 아닌 다른 누구도 생각나질 않을 만큼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펀치’를 집필한 박경수 작가는 “박정환은 김래원이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전 래원 씨가 만든 박정환을 따라간 것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더스타’ 인터뷰에서 김래원은 ‘펀치’ 속 박정환이 겹쳐 보일 만큼 차분한 말투로 정제된 말들을 내뱉었다. 김래원이 박정환이고, 박정환이 김래원인 것처럼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인터뷰 시간을 채웠다.

김래원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박정환 캐릭터에 진정성을 더하기 위해 체중 조절에 신경 썼다. 고된 밤샘 촬영에 식단 조절을 하지 않아도 4kg이 저절로 빠졌다. 박정환으로 카메라 앞에 선 김래원은 대본에 ‘미소’라고 쓰여 있어도 ‘그 미소를 안으로 먹겠다’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제 안에 박정환이 있으니까 해석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박경수 박가님께서 친절하게 좋은 대사와 상황을 주셨고,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이 있었기에 박정환이 살았죠.”


‘펀치’의 김래원을 보고 혹자는 이제야 맞춤형 캐릭터를 만났다. 대체 불가한 연기는 타고난 직관력이 따라주지 않고서야 힘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말이다. 김래원이 본 박정환은 부패한 돈으로 딸을 교육하고 안아준 인물이다. 죽음 앞에서 더 집착했고, 한편으로는 강인했다. 그는 캐릭터의 중심이 흔들린다고 느낄 때,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한 번씩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고 답을 찾았다.

“작가님께 ‘박정환의 캐릭터가 유지되고 있는 거냐, 힘이 빠지는 것 같고 조금 이상해진 것 같다’고 물었더니 ‘죽는 순간까지 날 서 있다’라고 하셨어요. 날 세워서 하란 얘기죠. 그래서 제가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을 더 진정성 있게 했어요. 힘주다가 실핏줄도 터지고 그랬는데, 너무 과하면 아픈 척 밖엔 안되거든요.”

극중 박정환은 진통제로 고통을 없애며 윤지숙 장관을 비롯한 ‘악의 축’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비가 온 다리를 끌고 도주하기도 하고, 건물 창밖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곧 세상을 떠날 박정환을 마지못해 보내야 하는 딸과 어머니의 눈물 앞에 무너지는 마음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적정선을 넘지 않는 것, 그것이 김래원의 연기 포인트기도 했다.

“신마다 제가 주는 강도가 있는데 그걸 전체적으로 분석해서 강약 조절을 했어요. 박정환을 할 때부터 캐릭터 분석을 시작했거든요. 조금의 실수는 늘 아쉽지만 그건 배우의 역량이니까 제가 부족해서 그런걸 수도 있죠.”

한 회에도 서너 번은 뒤바뀌는 승패에 시청자는 텔레비전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캐릭터의 중심을 잡고 연기해야 할 배우의 어깨는 오죽 무거웠을까 싶었지만, 김래원은 심플했다고 말한다. “사실 예전 드라마들이 보기에는 쉬웠어도 오히려 지금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힘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이번엔 괜찮았어요.”

배우가 캐릭터로 사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늘 궁금했다. 마치 박정환으로 4개월간 박정환으로 산 듯한 김래원은 자신은 분석보다 합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이태준 검찰총장 역의 조재현과는 “완벽한 호흡”이었다고도 했다.

“저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준비해서 딱 찌르는 건 오글거려요. 보는 사람은 임팩트 있을 수 있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조재현 선배와 할 때도 준비가 없었어요. 대사도 못 외우고 들어가도 술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밀당했죠. 그런 호흡이 완벽했어요.”


최근 ‘펀치’와 함께 영화 ‘강남 1970’을 선보인 김래원은 유독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30대 중반이 된 김래원이 남성미를 어필하고자 장르물에 연이어 도전한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김래원은 ‘펀치’에 합류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했다.

“회사에서 ’펀치’라는 작품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얘기를 듣고 영화도 무거운 걸 했는데 저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했어요. 박경수 작가의 전작 ‘추적자’를 찾아보고 ‘한 번 만나보겠다’고 했는데 방송사 윗분들 중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죠. 저도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이명우 감독님께서 저를 보고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는 감독님께 제일 고마워해야 돼요.”

자신만의 연기를 선보일 줄 아는 배우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지상파 드라마의 획일화된 스토리라인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 준비되지 않은 배우의 연기에 지쳐있던 시청자에게 ‘펀치’ 그리고 김래원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근래 20대 남자 배우들이 “’펀치’의 김래원 선배와 연기해보고 싶다”고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꺼져 가던 드라마의 불씨도 되살아났다. 완전체가 된 배우 김래원의 대표 캐릭터는 그가 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계속 바뀔 것이다.

“밝은 캐릭터를 일부로 안 하진 않을 거예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마음을 열려 있어요. ‘펀치’나 ‘강남 1970’에서 보여드렸던 역할들보다는 각이 빠진 역할을 하겠죠. 올해 영화를 하게 될지, 드라마로 인사드릴진 모르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제가 느끼는 대로 하려고요. 다음 작품에 실패하더라도 저는 진정성 있게, 늘 같은 모습으로 연기할 거에요. 역할마다 주어진 숙제가 다를 테니 그거 하나 잘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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